北, 영변 핵폐기와 종전 선언 맞교환에만 시선 끌려는 전략
 

이달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訪北)을 앞두고 북한이 비핵화 후속 조치로 제시한 '영변 핵 시설 폐쇄'와 관련, 미국 등 국제사회에서 "검증 없는 폐쇄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9월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미국의 상응 조치가 있을 경우 영변 핵 시설을 영구 폐기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상응 조치'는 종전 선언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북한이 '영변 핵 시설 폐쇄와 종전 선언의 맞교환'을 협상 카드로 들고 나온 것이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지난 29일(현지 시각) 유엔총회에서 "일방적 핵무장 해제는 절대 없을 것"이라며 미측에 종전 선언을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핵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 핵 개발의 역사가 담긴 영변 핵 시설은 해체에 앞서 전문가 사찰을 통한 검증이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밀 검증 없이 폐쇄할 경우, 북한의 핵 생산 역량과 지난 핵 활동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완전한 비핵화'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얘기다.

"검증 전 영변 폐쇄는 北의 증거인멸"

북한은 1960년대부터 평안북도 영변에 핵 단지를 조성해 현재까지 가동 중이다.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연간 5~7㎏, 고농축 우라늄을 연간 최대 40㎏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핵 개발의 역사가 담긴 지문(指紋)인 셈이다.
 
북한 영변 핵시설 지도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영변 시설은 50년 가까이 북핵 개발의 산실이었던 만큼 오히려 보존하면서 천천히 제대로 검증해야 할 대상"이라고 했다. 서 교수는 "영변엔 5MWe 흑연감속로 등 이미 노후화된 시설이 대부분인데, 여러 곳에 핵 시설을 보유한 북한이 영변 폐쇄를 선물로 주고 종전 선언을 받아내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북한의 '증거인멸'을 막는 차원에서 검증 전 영변 폐쇄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했다.

2008년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올 5월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때와 달리 이번엔 핵 전문가들이 들어가 생산량·오염도 등을 정밀 사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영변은 북한의 플루토늄 주 생산지로 알려져 있어 정밀 사찰이 이뤄질 경우, 북측 플루토늄 보유량은 명확해질 가능성이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 없이 일부 원자로 등 '빈껍데기 시설' 몇 개만 폐기하는 쇼를 용인한다면 과거 북한 비핵화 실패를 다시 반복하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고 했다.

영변 검증 요구하는 美… 일각선 "北이 받기 어려워"

트럼프 행정부도 영변 핵 시설의 폐쇄 전 사찰·검증이 필수라는 입장이다. 김정은이 '미국의 상응 조치 후 영변 핵 시설 영구 폐기' 의사를 밝혔을 때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이 미국과 IAEA 사찰단 참관 아래 영변의 모든 시설을 영구히 폐기하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고 했다. 김정은이 언급한 영변 핵 시설 폐쇄를 '전문가 정밀 사찰'이 포함된 패키지로 이해하겠다는 뜻이다. 외교 소식통은 "미 행정부는 북한 내 '강선' 등 다른 핵 시설이 여러 곳 존재하는 만큼 영변 핵 시설 폐쇄만으로는 북한의 '핵 동결'도 담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미측의 포괄적인 영변 사찰 요구를 북한이 받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남주홍 경기대 교수는 "IAEA 등이 영변을 사찰할 경우 그간 핵물질 추출량, 행방 등에 관해 끊임없는 의문이 제기될 텐데 북한이 사찰을 받아들일지 의문"이라며 "받아들인다 해도 IAEA가 상당 기간 상주하는 특별 사찰이 아니라 북측이 원하는 시기 에 한해 허용하는 사찰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미 행정부는 중간선거(11월 6일)를 앞두고 최근 잇따라 "비핵화 조치 전 제재 완화는 없다"며 대북 압박 기조를 강화하고 있어 연내 종전 선언에도 더욱 신중한 태도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영변 핵 시설을 둘러싼 양측 논의는 폼페이오 4차 방북, 오스트리아 빈 실무 협상을 통해 가닥이 잡힐 전망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01/20181001002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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