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총회 연설서 주장, 미국의 先상응조치 요구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10월 방북을 앞두고, 북한이 종전 선언과 대북 제재 해제 등 미국의 '선(先) 상응 조치'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유엔 총회 연설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먼저 핵무장을 해제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면서 이 같은 상응 조치 등을 거론했다. 북한은 또 미국의 '한반도 핵(核)우산' 문제까지 거론하며 "미군의 핵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용호는 이날 연설에서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중지, 핵실험장 폭파 등을 거론하며 북한이 "중대한 선의의 조치들을 먼저 취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의 상응한 화답을 우리는 보지 못하고 있다"며 "(미국은) '선(先) 비핵화'만을 주장하면서 그를 강압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제재 압박 도수를 더욱 높이고 있으며, 심지어 '종전 선언' 발표까지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서 연설하는 北 리용호 -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유엔서 연설하는 北 리용호 -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리용호는 또 "제재가 우리의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서 "미국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우리 국가의 안전에 대한 확신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대북 제재 해제와 종전 선언 이전에 핵무기 폐기·반출 같은 본격적 비핵화 조치는 않겠다는 의미다. 북한이 그간 주장해 온 '동시 행동'보다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의 '선(先) 상응 조치' 요구에 가깝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편 미국 CBS방송은 "(폼페이오 장관이) 다가오는 북한과의 협상을 준비하면서 종전 선언 가능성이라는 하나의 도구를 눈에 띄게 탁자 위에 올려놓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영변 핵시설 폐기와 종전 선언 맞교환' 카드가 검토되면서 실질적 비핵화를 담보하는 '영변 핵시설과 핵물질 검증' 논의는 실종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북한 리용호 외무상의 '선(先) 상응 조치' 요구는 유엔총회에서 대북 제재 해제·완화 필요성을 강조한 중·러의 지원 사격 직후에 나왔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달 28일 유엔 총회에서 "진정으로 북한과 타협하기 위해 미국이 시의적절하고 긍정적인 반응(대응)을 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고 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조치는 대북 제재 완화 조치와 나란히 가야 한다"고 했다.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를 보여주고 미국의 제재 해제와 종전 선언을 끌어내기 위해 북·중·러가 의기투합한 모양새다.

리용호는 유엔 연설에서 "그(핵·탄도미사일) 시험들이 중지된 지 근 1년이 되는 오늘까지 제재 결의들은 해제되거나 완화되기는커녕 토 하나 변한 것이 없다"며 안보리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또 지난 8월 남북 철도 공동 조사가 유엔사의 군사분계선(MDL) 통행 불허로 무산된 것을 겨냥해 "유엔군사령부는 북남 사이의 판문점 선언의 이행까지 가로막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북한이 이처럼 강력히 상응 조치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이달 방북할 폼페이오 장관과의 담판을 앞두고 몸값을 높이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를 통해 종전 선언과 대북 제재 완화를 한꺼번에 받아내려는 속내를 내보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그동안 언급을 자제했던 미국의 '핵우산' 문제까지 건드린 것은 주목해야 할 대목으로 평가된다. 리용호는 "(미국은) 조선반도 전쟁 시기 수십 발의 원자탄을 떨구겠다고 공갈한 적이 있는 나라이며 우리의 문턱에 끊임없이 핵 전략 자산을 끌어들인 나라"라고 했다.

이날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서면으로 발표된 태형철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겸 고등교육상의 연설문도 노골적으로 미국의 핵우산 포기를 주장했다. 태 총장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결코 우리 공화국(북한)의 일방적인 핵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하나는 조선반도에서의 미군의 핵 위협 제거이고, 다른 하나는 이에 상응해 우리 공화국이 보유한 핵과 관련해 미국의 우려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안보 전문가들은 "북이 가진 핵은 제대로 신고하지 않으면서 미군 핵우산과 핵 전력은 먼저 빼내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했다.

한편, 리용호는 유엔 총회 기간 아프리카 국가들의 대표부가 모여 있는 '우간다 하우스'까지 방문했지만 강경화 외교장관과 끝내 만나지 않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01/20181001002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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