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연구원 출신 탈북자 이민복은 2003년부터 북한에 전단을 날렸다. 대형 풍선에 매달아 보낸 숫자만 3억장쯤 된다. 6·25전쟁과 태평양전쟁 다큐를 담은 CD와 USB도 풍선에 넣었다. '6·25가 남조선 괴뢰 도당의 북침으로 시작됐다'거나 '김일성이 일본을 항복시켰다'는 거짓 신화를 파헤쳤다. 그런데 올해는 예년의 10%밖에 전단을 못 보냈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앞뒤로 경찰이 전단 살포를 막았다. 그는 "북한 주민이 외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전단인데 이걸 막으면 어떡하느냐"고 했다.

▶'판문점 선언'엔 대북 전단을 막는 조항이 들어 있다. 회담 뒤 당국도 살포를 단속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근거가 애매했던지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내걸었다. 시민 안전이 위험한 경우 경찰이 억류·피난 같은 조치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대북 전단'에 반대하는 단체와 부딪칠지도 모른다는 구실이다. 심지어 전단 살포를 쓰레기 투기로 취급해 경범죄로 다스리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그것도 모자랐던지 여당이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법으로 막겠다고 한다. 통일부 장관 승인을 받지 않고 전단을 보내면 3년 이하 징역까지 살린다는 법안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5년 "대북 전단 살포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하는 영역 안에 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명시한 바 있다. 이렇게 전단 살포를 표현의 자유로 보장한 대법 판례까지 거스르겠다는 정치적 속셈이야 말 안 해도 알 것 같다.

▶이 정부 사람들은 김정은 체제 비판이나 북한 인권 실태를 알리는 활동에 반감을 갖고 있다는 걸 숨기지 않는다. 얼마 전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시민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가 북한을 자극할지 모른다며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의원 시절이던 2014년 11월 동료 의원들과 '대북 전단 중단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었다.

▶북한 인권 단체가 한반도 평화를 훼방 놓으려고 전단을 보내는 건 아니다. 눈 귀가 가려진 채 체제 찬양만 강요받는 저쪽 주민에게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일 뿐이다. 동독 주민은 통일 전에도 서독 TV를 봤지만 북한 주민은 한국 방송을 듣다 잡히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다. "북한 주민을 위한 언론도 인권 개념도 없다"는 탈북자 외침을 정부는 짐짓 외면한다. 북한 주민보다 김정은 심기를 신경 쓰는 기이한 분위기 속에서 대북 전단이 '공공의 적'으로 몰리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30/2018093002172.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