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南北정상회담] '반쪽' 비핵화 합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9일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다"고 말했다. '한반도 비핵화'란 북한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셈이지만, 김정은이 이를 공개석상에서 육성(肉聲)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이날 발표된 평양공동선언의 5조 1항에서 북측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또 5조 2항에서는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 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 조치가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남과 북은 처음으로 비핵화 방안도 합의했다"며 "매우 의미 있는 성과"라고 말했다.
 
평양 공동선언 합의문 맞교환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평양 백화원 초대소(영빈관)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9월 평양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악수하고 있다. 양 정상은 선언문에서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核)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뤄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평양 공동선언 합의문 맞교환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평양 백화원 초대소(영빈관)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9월 평양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악수하고 있다. 양 정상은 선언문에서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核)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뤄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동창리 엔진시험장 폐기는 김정은이 지난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 이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구두로 약속했던 사항이다. 다만, 북한이 독자적으로 밟아왔던 폐기 절차를 외국 전문가의 참관하에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전보다 진전된 부분이다. 비록 '미국이 상응 조치를 취하면'이란 전제 조건이 붙었지만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를 언급한 점도 '미래핵 폐기'의 가능성을 거론한 것으로 눈에 띄는 대목이다.

김기정 연세대 교수는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 폐기는 미국이 원하는 '선제 조치'의 한 부분이며 엔진시험장 폐기는 미래 핵 능력 포기란 명백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미국의 상응 조치란 단서는 달았지만 영변 핵시설 폐기도 언급했고 비핵화 협상의 정체기를 돌파하는 출발점으로서의 내용은 담겼다"고 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현재 보유 중인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 등을 낱낱이 밝히는 '핵 신고' 절차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미국의 요구 수준과 상당한 간극(間隙)이 있다. 지난 5월 뉴욕타임스는 미국 랜드연구소를 인용해서 북한은 핵탄두 20~60개와 핵시설 40~100곳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지금까지 확보한 핵물질도 플루토늄이 40~50㎏, 고농축우라늄 600~700㎏ 정도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 1000여 발의 다양한 탄도미사일도 보유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재 핵'의 폐기는 '완전한 비핵화'의 핵심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관련 리스트 제출도 거부해 왔다.
 
남북 합의문, 왜 길이가 다르지? -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펼쳐 보인 9월 평양 공동선언문(위)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펼쳐 보인 선언문(아래). 이날 공개된 사진에 양측이 합의한 선언문 길이가 달라 궁금증을 자아냈다. 우리 측 선언문은 종이 크기가 커 4쪽 분량이었고, 북측은 종이가 작아 7쪽 분량이어서 차이가 났던 것으로 확인됐다.
남북 합의문, 왜 길이가 다르지? -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펼쳐 보인 9월 평양 공동선언문(위)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펼쳐 보인 선언문(아래). 이날 공개된 사진에 양측이 합의한 선언문 길이가 달라 궁금증을 자아냈다. 우리 측 선언문은 종이 크기가 커 4쪽 분량이었고, 북측은 종이가 작아 7쪽 분량이어서 차이가 났던 것으로 확인됐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핵 리스트 신고가 비핵화 프로세스의 초입인데 그런 이야기는 전혀 없고, 다른 곳에 우라늄 농축 시설을 지어 놓은 상황에서 이미 역할이 끝난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해서조차 '의지 표명'만 했다"고 말했다.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를 100이라고 봤을 때 1을 할지 말지를 두고 생색내고 있다"는 것이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도 "북한이 이미 가지고 있는 핵무기와 핵기술에 대해선 얘기가 없고 변두리만 그것도 '조건부'로 건드렸다"고 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때처럼 북한이 특정 시설을 임의로 선택하는 것 역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이 비핵화 대상을 스스로 정하고, 스스로 폐기하고, 그에 대한 보상까지 요구하는 북한식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해법을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이 큰 문제"라며 "전형적 살라미 전술을 받아들여 앞으로 비핵화 협상에서 우리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합의를 했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미·북 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 미·북 협의에서 북한이 2010년쯤부터 가동해 온 영변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파괴할 용의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 앞서 북이 자체 채널로 미국의 반응을 타진했던 셈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20/20180920003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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