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南北정상회담]
공개 발언선 덕담만… 南 정의용·서훈, 北 김여정·김영철 배석
'北 핵리스트 제출 동의' 김정은 육성 또는 문서화 여부가 관건
 

18일 오전 평양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 45분부터 5시 45분까지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첫 회담을 했다. 노동당사에서 남북 정상이 회담한 것은 처음이다.

이날 공개된 회담 모두(冒頭) 발언에서 문 대통령과 김정은 모두 비핵화 문제를 직접 거론하진 않았다. 먼저 발언한 김정은은 "이렇게 노력해 주신 결과, 조·미(북·미) 수뇌 상봉이라는 그런 역사가 생겨났다"며 사의를 표했다. 김정은은 "이쪽 지역 정세의 안정, 평화 번영도 이야기하려고 노력하면서 주변과 소통하고 하면 앞으로 조·미 사이에도 계속 진전된 결과가 나올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발언을 두고 청와대 일각에선 '미·북 교착 상태서 북한이 진전된 비핵화 조치를 취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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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北노동당 청사에 첫발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8일 오후 정상회담 장소인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이에 문 대통령은 "판문점의 봄이 평양의 가을이 됐다"고 답했다. 이어 "남북 관계, 또 북·미 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는 김 위원장의 위대한 결단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사의를 표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또 "어려운 조건에서도 인민의 삶을 향상시킨 김 위원장의 지도력에 경의를 표하며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8000만 겨레에 한가위 선물로 풍성한 결과를 남기는 회담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공개 발언은 없었지만 이날 회담에서는 비핵화, 군사적 긴장 완화, 남북 관계 개선 등 주요 의제가 정해진 순서 없이 포괄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회담에 우리 측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 북측에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각각 배석했다. 이 또한 '미·북 비핵화 후속 협상' 문제가 주요 의제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김정은에게 핵 리스트 제출 같은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종전(終戰) 선언을 동시 추진하는 중재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은 '우리 민족끼리 정신'과 '북남 관계 개선'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8일 정상회담을 가진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8일 정상회담을 가진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이 같은 미묘한 입장 차는 이날 저녁 만찬 자리에서도 감지됐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언급했지만 김정은은 '난관' '역풍'을 언급하며 "북남이 손을 맞잡고 나갈 때 길이 열린다"고 했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여전히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의 직접적 언급이 없었다"며 "문 대통령을 설득해 남북 관계가 급속 개선되면 이를 통해 완전한 비핵화 없이도 대북 제재를 무력화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고 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성패는 결국 북한의 구체적 비핵화 조치를 끌어내 미·북 비핵화 협상을 촉진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문 대통령은 평양에서 돌아온 후 곧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해 현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이번 평양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에 전달할 만한 '성과'를 확보할 수 있는지에 전 세계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이 희망하고 있는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를 달성하기 위해 북한이 '핵 신고→핵 폐기→검증'이란 통상적 절차를 밟을 뜻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관건이다.

만약 핵무기·핵물질·핵시설에 대한 리스트 제출 등에 북한이 동의하고, 그것이 김정은의 육성(肉聲)이나 명문화된 합의 형태로 발표되면 미·북 간 비핵화 중재에 큰 진전이 예상된다. 하지만 이번에도 북한이 종전 선언 등 '선(先) 안전 보장'만 요구하거나 여러 전제 조건을 붙이며 '한반도 비핵화'란 모호한 표현만 되풀이할 경우 미·북 간 접점을 찾 기가 더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 현재 미국은 북한의 구체적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며 대북 제재·압박에 다시 무게를 싣고 있다.

다만 김정은도 미국이 이번 회담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을 아는 만큼 과거보다 진전된 입장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핵 리스트를 당장 제출하지는 않더라도 특정한 조건에서 핵 신고를 할 수 있다는 정도의 의사 표현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19/20180919002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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