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 비준동의안 관련 남북경협 사업 비용 논란
 

정부가 11일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은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각종 경협(經協) 사업을 국회 동의와 예산 지원을 받고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이날 비준안에 첨부한 비용 추계서에서 "올해 1726억원의 경협 예산을 내년 4712억원으로 2986억원 늘리겠다"고 밝혔다. 2년 동안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산림 협력 등에 총 6438억원을 쓰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향후 수십조원 이상으로 불어날 수 있는 사업들인데 정부 비용 추계는 '과소 추계'"라고 지적했다. 야당은 "'국민 부담' 논란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했다.

◇전문가 "수십조" vs. 정부 "6400억"

사업별로는 내년도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에 융자 1087억원을 포함해 2951억원을 편성하고 '산림 협력'(1137억원), '사회·문화·체육 교류'(205억원), '이산가족 상봉'(336억원)도 예산을 늘렸다. 개성에 만들 예정인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운영에는 신규 83억원이 편성됐다. 철도·도로 북측 구간 개·보수 비용과 관련해 정부는 "초기 북한 경제 인프라 건설에서는 남북협력기금이 마중물 역할을 수행한다"며 "경제 인프라 건설은 대규모 재원을 필요로 하기에 차관 형식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개성의 고려 궁궐터인 만월대(滿月臺) 전경.
남북,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 재개하기로 - 개성의 고려 궁궐터인 만월대(滿月臺) 전경. 문화재청은 남북이 오는 27일부터 3개월간 고려 궁궐터인 개성 만월대 남북 공동 발굴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11일 밝혔다. 개성 만월대는 400여년간 고려 왕조가 사용하던 궁궐로 자연을 활용한 건물 배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화재청
 
그러나 2년간 정부가 쓰겠다는 '6438억원'은 2008년 통일부가 '10·4 공동 선언 이행 비용' 자료에서 추계한 14조3000억원의 4.5%에 불과하다. 최근 정부·민간 추계와도 상당한 차이다. 금융위원회는 2014년 '통일 금융 보고서'에서 철도 85조원, 도로 41조원 등 북한 인프라 투자 비용을 153조원으로 추산한 바 있다. '6438억원'과 비교하면 230배 이상 많다. 올해 미래에셋대우가 남북 철도 57조원, 도로 35조원 등 112조원의 북한 인프라 비용을 추산하는 등 민간 기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봉현 IBK 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앞으로 민간 자본의 투자비 형태로 투입되는 사업들까지 합치면 (비용이) 수십조 정도 될 것"이라고 했다.

비준안에 명시된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가 해제되지 않고는 추진하기 어려운 사업이다. 우리 정부가 현금을 차관 형식으로 제공하거나 건설 장비 등이 북으로 넘어갈 경우 제재 위반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안보 전문가들은 "정부가 실현되지도 않은 북한 비핵화를 가정하고 비준 동의안을 국회로 보낸 것은 명백한 과속(過速)"이라고 했다.

◇제재 위반·기금 남용 논란도

이날 정부가 '재원은 일단 정부 기금으로 투입하고, 더 필요하면 국회에 요구하겠다'고 밝힌 것도 논란이다. 정부는 비용 추계서에서 "향후 철도·도로 등 착공으로 사업비를 추가로 확보할 필요성이 있을 경우 (1조원대의) 남북협력기금 운용 계획 변경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번 추계는 본(本)사업비를 다 빼고 설계 비용이나 사전 타당성 조사 용역비 같은 작은 액수만 넣은 것 아니냐"고 했다. 통상 의원들이 복지·세금 확대 법안을 발의할 때도 5년간 소요 비용 정도는 추계한다.

이를 두고 예산 전문가들은 "낚시성 소액 예산으로 시작해 매년 눈덩이처럼 불리는 '낙타의 코' 전략과 닮았다"고 했다. '낙타의 코'는 낙타가 천막 안에 코만 넣었다가 나중엔 몸까지 밀어 넣는 행태를 빗댄 예산 관련 용어다. 야당 관계자는 "정부가 18~20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선물 꾸러미'를 마련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정부는 비준 동의안에서 판문점 선언 동의 절차를 '남북 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3항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법 조항은 '중대한 재정적 부담이 있는 남북 합의서 체결 때 국회가 동의권을 갖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국회가 동의해주면 이후 기술적·절차적 사항에 대한 후속 합의서는 남북 회담 대표나 대북 특별 사절의 서명만으로 발효가 가능해진다. 반대로 비준안 통과가 실패할 경우 여권(與圈)은 "국회가 스스로 권한을 포기했다"면서 그 책임을 야당에 떠넘길 공산이 크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12/20180912002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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