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토론토 영화제에서 선보인 미국 영화 '더 트루스'는 '국가 기밀'을 보도했다가 취재원을 밝히라는 법원 요구에 응하지 않아 수감된 기자가 주인공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직후 CIA 비밀 요원 신분이 노출되자 부시 행정부가 취재원 색출에 나선 '리크(leak) 게이트'에서 소재를 땄다. 영화에선 특별검사가 CIA와 행정부 고위 관료들을 거짓말 탐지기로 조사하고 발설자가 아니라는 각서까지 내게 하는 등 집요하게 색출에 나선다. 실제로 뉴욕타임스 기자는 취재원을 밝히라는 요구를 거부해 수감됐다. '리크 게이트'는 발설자가 대통령 측근으로 드러나면서 정치 스캔들로 번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부에 불리하거나 민감한 기사를 쓰면 발설자를 찾는 뒷조사가 벌어진다. 노무현 정부 당시 본지가 청와대에서 방코델타아시아에 묶여 있는 북한 자금을 한국수출입은행을 통해 중개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햇볕 정부'가 북에 대한 금융 제재를 어떻게든 풀어주려다 벌어진 일이었다. 쉬쉬하던 정부는 보도가 나가자 곧바로 발설자 색출에 나섰다. 이젠 기자와 공무원의 통화 내용을 조사하고, 취재원 뒷조사를 벌이는 게 일상이 됐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엊그제 "나는 트럼프 정부 내 레지스탕스"라며 트럼프 정부의 난맥상을 고발한 뉴욕타임스 익명 칼럼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반역"이라며 기고자 색출을 지시했다. 펜스 부통령을 비롯한 각료 대부분과 참모가 줄줄이 공개 부인했다. 초강대국 핵심 인사들이 "나는 아니다"며 앞다퉈 충성 선언에 나서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고자가 정부 내 뿌리 깊은 '딥 스테이트'(deep state) 인사일 수 있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반성보다는 남 탓으로 돌린 것이다. '딥 스테이트'는 정보기관이나 군부, 고위 관료같이 권력을 움직이는 배후 세력을 가리킨다.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선출되지 않은 집단이 민간 정부를 위협하며 국정을 좌우한다는 얘기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민 상당수가 '딥 스테이트' 존재를 믿는다고 한다.

▶'자유의 나라' 미국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모를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무장관에게 기고자를 색출하라고 지시까지 했다고 한다. 대통령 입으로 '반역'이라고 했으니, 기고자가 밝혀지면 반역죄로 기소될지도 모른다. 신문에 직언 칼럼 썼다고 교도소 가는 고위 관료가 나올 판이다. 공산 독재국가도 아닌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낯설고 불안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09/20180909022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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