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사단 방북 브리핑]
金, 한반도 문제에 美 개입 차단 '조선반도 비핵화' 주장 되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5일 대북 특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2021년 1월) 내에 북한과 미국의 70년간 적대 역사를 청산하고 북·미 관계를 개선해 나가면서 비핵화를 실현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6일 알려졌다. 김정은이 비핵화에 관한 시한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남북이 올 4월 판문점 회담 때 합의했다고 언급한 '1년 내 비핵화(2019년 4월)'보다는 1년 9개월 늘어난 것이다. 또 이번에도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는 본인 육성(肉聲)이 아닌 특사단의 전언과 북한 관영 매체 보도를 통해 공개됐다. 김정은은 4·27 판문점 선언과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때도 공개 석상에선 '비핵화'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김정은은 특사단에 비핵화를 언급할 때도 한·미 연합 훈련과 미 전략 무기 파견 중단을 겨냥한 '조선반도 비핵화'를 주장했다. 북한 비핵화의 핵심 쟁점인 핵 신고·검증 등에 관한 언급도 없었다. 겉으로는 '완전한 비핵화'를 강조했지만 실질적인 태도 변화는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임기 내" 밝혔지만…

김정은이 '트럼프 임기 내 비핵화'를 언급한 것은 최근 미국 내 비판적 기류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6·12 미·북 회담 이후 북한의 비핵화 후속 조치가 늦어지자 미 조야(朝野)에선 비핵화 협상 회의론이 확산됐다. 지난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까지 취소되면서 제재 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자 다급해진 북한이 '비핵화 시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변함없다"고도 했다. 다분히 트럼프 행정부를 달래기 위한 발언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김정은은 실제 '북 비핵화'가 아닌 '조선반도 비핵화'를 주장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방북 성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정 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장으로 5일 북한을 다녀왔다. 왼쪽부터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정 실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방북 성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정 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장으로 5일 북한을 다녀왔다. 왼쪽부터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정 실장. /연합뉴스

김일성의 유훈(遺訓)인 '조선반도 비핵화'는 미국의 한반도 문제 개입 여지를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긴 개념이다. 북한은 과거 국제사회의 비핵화 요구 때마다 "우리는 조선반도 비핵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특사단은 '핵 신고·사찰이 우선'이라는 미국과 '종전 선언이 먼저'라는 북한 간 입장 차를 좁히기 위해 '동시 이행'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정은은 "동시 행동 원칙이 준수된다면 좀 더 적극적인 비핵화 조치들을 취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일단 우리 측 제안을 받아들인 모양새다. 하지만 북이 말하는 '동시 행동 원칙'은 풍계리 핵 실험장 폐쇄와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해체 등에 상응해 미국이 종전 선언과 제재 완화 등 '보상안'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미국에 선(先) 조치를 요구하는 기본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김정은은 그러면서도 핵 신고·검증 등 실질적 비핵화 조치에 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美 "문 대통령이 수석 협상가 돼달라"… 부담 커진 정상회담

정의용 실장은 이날 "(김정은이) 자신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김정은이 주장한 대로 북한의 진정성을 믿고 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미국에 전한 것으로 해석됐다.

우리 정부가 직접 나서 북한의 진정성을 사실상 보증한 만큼 '중재자'로서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이 더욱 무거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미국 내에선 "북한이 풍계리 핵 실험장 폭파 같은 이벤트만 할 뿐 비핵화 이행은 하지 않고, 한국은 남북 관계 개선에만 치중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 정부가 내놓은 '핵 리스트 제출-종전 선언 동시 이행' 방안도 핵 리스트 검증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회의론이 많다.

미측은 일단 오는 18~20일로 예정된 3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김정은으로부터 추가적인 비핵화 이행 카드를 받아올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일 밤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북한과 미국 양쪽을 대표하는 협상가, 치프 네고시에이터(chief negotiator), 수석 협상가가 돼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인도네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올해 말까지 (비핵화와 남북 관계를)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진도를 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하지만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의 수석 협상가 발언은 문 대통령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을 우리 측에 지울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비핵화 협상이 지연될 경우 우리 정부가 미·북 사이에 끼여 난감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07/2018090700314.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