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김정은에 대한 신뢰가 빠르게 줄고 있다"
트럼프, '대결'로 돌변할 수도… 北, 기회의 門 놓치지 말아야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김정은에 대한 워싱턴의 신뢰와 인내심이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말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취소한 이후 워싱턴 분위기에 대해 미 행정부 전 고위 관리가 한 얘기다.

비핵화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김정은을 신뢰하기는 한다는 뜻일까. 한 전문가는 "미국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전 김정은을 협상해 볼 만한 상대라고 판단했고, 아직도 그런 기대는 갖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김정은 위원장도 지난 5일 방북한 특사단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변함없다"고 했다. 트럼프도, 김정은도 대화의 판을 깨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트럼프의 입장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경제지표는 훈훈하지만 국내 정치적 압박이 커지고 있다. 무엇이든 이겨야만 하는 트럼프로선 초조할 수밖에 없다. 지난달 성 추문과 러시아 내통 의혹과 관련된 트럼프의 오랜 측근 두 명이 유죄를 받았다. 이어 워터게이트 스캔들 특종 기자 밥 우드워드의 책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가 나왔다. 트럼프의 백악관이 얼마나 한심하게 돌아가는지 내부 인사들의 육성으로 생생하게 전한 책이다.

오싹한 부분은 외교정책 결정 과정이다. 소시지와 법의 공통점은 만드는 과정은 보지 않는 쪽이 낫다는 것이다. 트럼프 외교정책 결정 과정도 마찬가지다. 우드워드는 참모가 서류를 숨긴 덕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파기를 모면했고, 국방장관이 '3차 대전을 막기 위해서'란 이유를 대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트럼프에게 납득시켰다고 썼다. 한·미 관계를 지탱하는 경제와 안보의 큰 축이 대통령의 뜻을 거스른 참모들 덕에 운 좋게 살아남은 셈이다.

이어 나온 익명의 행정부 관리가 쓴 뉴욕타임스 기고는 폭발력이 더 컸다. 정부 내 '레지스탕스(저항 세력)' 일원을 자처하는 기고자는 트럼프가 밀어붙일 '최악'을 막기 위해 뛰고 있다고 토로했다. 트럼프가 '워싱턴의 오물'이라고 몰아세웠던 세력이 조직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스캔들과 역경에 강한 트럼프는 '가짜 뉴스' 프레임으로 이들을 공격하고 있다. 그런데 어쩐지 힘이 빠져 보인다. 우드워드가 책을 다 쓴 후 트럼프와 통화했던 녹취록을 보면, 트럼프는 자신의 업적을 홍보할 수 있는 인터뷰 기회를 놓친 것을 아쉬워한다.

김정은은 방북 특사단에 트럼프의 첫 임기 내에 비핵화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한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그러나 "트럼프는 김정은이 기존에 했던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만 할 게 아니라 실천할 준비가 됐다는 걸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정은은 트럼프가 11월 초 미국 중간선거까지는 싱가포르 정상회담 분위기를 그대로 밀고 갈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국내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면 트럼프는 북핵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할 수도 있다. 그것은 대화가 아닌 대결일 수 있다. 미국 여론은 위기 상황일수록 더 대통령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에서 만나는 외교관이나 전문가들은 "온건파와 강경파가 모두 대화를 통한 해결을 지 지하는 드문 기회를 김정은이 빨리 활용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들 한다. 한 전문가는 "트럼프는 '이 길이 아니다'는 판단이 서면 과감하게 돌아설 명분을 재빨리 만들어내는 스타일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기회의 문은 생각보다 빨리 닫힐 수 있다. 임기 없는 김정은이 중간선거와 대선을 또 치러야 하는 트럼프의 심정을 과연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06/20180906037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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