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평양에 다녀온 특사단은 오는 18일부터 2박 3일간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사단이 북과 합의하고 온 것은 사실상 그게 전부다. 특사단이 출발할 때는 국가안보의 운명이 걸린 담판을 하러 가는 분위기였는데 정상회담 날짜 하나 받아왔다.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받고 특사단과 식사도 함께하지 않았다. 심지어 저녁은 우리 특사단 5명끼리만 먹었다고 한다. 국가 정상의 위임을 받아 방문하는 특사단을 이렇게 대접하는 경우가 있나. 아무리 상식이 통하지 않는 폭력집단이라고 해도 도를 넘었다.

국가안보실장과 국정원장으로 구성된 최고위급 특사단이 북에 간 것은 비핵화 협상을 제 궤도로 돌려놓는 데 목적이 있었다. 미국은 북한이 핵탄두와 핵 물질, 핵 시설의 리스트를 제출하면 이를 검증하고 이와 동시에 북한이 원하는 종전 선언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특사단은 김정은과 문제의 핵심인 '북핵 리스트'를 놓고 이것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상황을 제대로 전달해야 했다. 그런데 특사단 발표에는 "김정은이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말뿐이다. 북한이 "비핵화하겠다"는 것은 김일성, 김정일도 했던 말이다.

특사단은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2022년 1월)에 비핵화가 실현됐으면 좋겠다"며 시한을 제시했다고 했다. 이 시한 내에 비핵화가 되려면 지금 북핵 리스트를 제출하고 검증을 시작해도 늦다. 핵 리스트 제출조차 거부하면서 말로만 하는 비핵화를 믿을 수 있나.

김정은은 자신의 비핵화 의지에 국제사회가 의문을 품는 데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특사단은 전했다. 미·북 정상회담 이후 석 달이 되도록 북이 한 일이라곤 스스로 '더 이상 쓸모없다'고 밝힌 핵 실험장과 미사일 시험 발사장을 폐쇄하는 쇼를 보여준 게 전부다. 수십 개로 추정되는 핵무기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 시설을 실질적으로 없애는 조치는 시작도 안 했다. 없애는 것은 고사하고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신고라도 먼저 하라고 해도 '강도 같은 요구'라며 화를 내기만 했다. 특사단은 이런 김정은에게 비핵화 초기 조치라도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설득해야 했다. 그렇게 했나. 이에 대해선 아무 발표 없이 김정은의 '답답해한다는 심정'을 마치 공감이 간다는 태도로 국민에게 전달했다. 특사단 발표를 보면 김정은과 치열한 협상을 한 것인지, 그의 계산된 말을 전해주는 대변인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미국은 요즘 들어 한국 정부를 향해 비핵화를 방해할 수 있는 남북 사업을 자제하라고 동맹국 사이에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강도 높은 경고를 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북 제재 위반이라며 미국이 반대하는 남북 연락사무소를 며칠 내에 개소할 것이며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남북 경협사업이 주종을 이루는 판문점 선언 이행을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특사단이 '북핵 리스트와 검증'에 대한 김정은의 획기적 제안을 비밀리에 들고왔기에 이런 무모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길 바랄 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06/2018090603782.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