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美 속도조절 요구와 과속방지턱 존재 이유

3주 전쯤인 8월 16일 목요일 서울시청 청사 근처의 ‘S’ 커피전문점.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옆자리에 여성 2명, 남성 1명이 와서 앉았다. 이들은 업무 얘기를 하는 듯했다. 이들의 대화에 관심을 가진 건 갑자기 ‘그동안은 중국을 통해서 했는데 어떨 땐 해 주고 어떨 땐 안 해 주니, 북한이랑 육로를 개방해서 전면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자면 (대북 지원) 물량이 어느 수준으로 개런티(보장)돼야 한다’라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민간단체를 통해 밀가루, 의약품 등을 북한에 보내는 계획을 논의했다. 밀가루만 보내면 국내 여론이 안 좋을 것 같아서 어린이 영양 지원도 넣어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대화를 주도한 여성 1명은 서울시 소속 공무원이다. 그런 확신이 든 건 ‘그쪽(북한)에 통보는 개별 민간단체가 했지만, 모니터링은 우리가, 서울시가 같이 가야지’와 같은 말을 여러 차례 했을 때다. 중간중간 ‘시장님의 생각’이란 것도 나왔다.

이들은 대북 지원 재개와 북한과의 개발협력을 위한 서울시의 자금 매칭 등을 논의했다. ‘이미 올해 서울시에 8억원 요청이 들어왔는데, 아주 작게 잡아도 3년이면 24억원이다. 서울시가 이렇게 하면 ‘어디(특정 단체)’가 기업 등에서 두 배의 자금을 펀딩(조달) 해오겠다고 한다. (개발) 재개되면 북한이 훨씬 더 큰 규모를 요구할 거다’ 등 수치도 꽤 구체적이었다.

대북 제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북한 지원에 대한 ‘언론의 공격’과 일부 국민 사이에 남아 있는 ‘부정적 여론’을 걱정하기도 했다. 공무원이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저렇게 민감한 내용을 그렇게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전날인 15일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연내 남북 연결 철도·도로 착공, 통일경제특구 설치 등 남북 경협을 본격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남북 관계 발전은 북·미 관계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니다"라며 미·북 비핵화 협상 답보와는 별개로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후 남북 관계와 경협에 속도를 내려는 한국 정부에 미국은 연일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북한이 구체적 비핵화 조치를 하지 않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이 곤란한 상황에서 한·미 비핵화 공조에 잇따라 파열음이 나는 것이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23일 개성공단 내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설치를 위해 한국 측이 제공한 물자가 대북 제재를 위반하는지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를 향해 남북 관계는 비핵화 진전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도 했다.

미국이 제재 위반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한국 정부에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데도, 청와대 핵심 인사들은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앞세운 ‘신 자주노선’을 강조하고 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 내일은 다르게 시작된다"고 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5일 한 콘퍼런스에서 "북핵에 모든 것을 걸면 남북 관계가 잘 안 되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끌어내기 어렵다"며 미국에 얽매이지 말고 남북 관계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하지 않으면 대북 제재는 강력히 유지될 것이란 입장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남북 관계 개선은 북한 비핵화와 보조를 맞춰 진행돼야 한다. 과속방지턱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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