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청와대에서 '당·정·청 전원회의'가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수석 전원, 이낙연 총리와 장관 전원, 이해찬 대표와 민주당 의원 123명 등 모두 200명 가까이 모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17대 총선 당선자 152명을 청와대로 불러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적은 있지만 이런 대규모는 처음이다. 그런데 야당이 '전원회의'란 이름을 문제 삼고 나섰다. 민주당 쪽에서는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잘해보자는 의미일 뿐"이라고 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전원회의'는 평소 들어보기 어려운 용어인 것은 사실이다.

▶국회에는 '전원위원회'가 있다. 중요 법안 처리에 앞서 의원 전원이 모여 심사하는 제도다. 최저임금위 전원회의, 노동위 전원회의처럼 노동계에선 이 용어가 낯설지 않게 사용된다. 
 
[만물상] '전원회의'

▶전원회의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북한은 당 '전원회의', 중국은 당 '전체회의'가 핵심 기구다. 주요 정책·노선·인사를 여기서 결정한다. 중국은 당 중앙위원 200여명이 전체회의 멤버인데 주요 장차관과 지방 책임자가 다 들어온다. 북한도 '노동당 전원회의'를 연다. 사회주의권 전원회의는 거수기 역할을 해왔다. 중국 대약진 운동으로 4000만명이 굶어 죽고 문화혁명으로 나라가 망가질 때 회의는 꼬박꼬박 열렸지만 누구 하나 반대 목소리를 못 냈다. 북한에선 1956년 전원회의 당시 연안파와 소련파가 김일성 독주에 도전하다가 곧바로 숙청됐다. 그 뒤론 전원이 모여 박수만 쳤다. 때로 중대 결정이 이 회의를 통해 공개되기도 한다.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1985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가 그랬다.

▶1980년대 대학 운동권을 휩쓸었던 주사파는 북한 용어를 쓰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한 전대협 출신은 "당시 총학생회 간부가 많이 모이는 회의를 '전원회의'라고 부르곤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공식 조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쓰던 '전원회의'란 말이 30여년 만에 무심결에 정부 안에서 튀어나온 것일까. 그러고 보니 청와대 비서실 비서관 31명 중 19명이 운 동권·시민단체 출신이다.

▶전원회의든 전체회의든 명칭이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대로 된 토론과 고민을 하고 국민을 위한 정책을 내놓느냐가 관건이다. 그런데 '청와대 전원회의'는 박수만 치다가 끝났다. 결정은 '전부 다 하던 그대로 밀어붙인다'는 것뿐이다. 청와대, 장관, 의원 전원이 모인 것이 민주국가에서 유례가 있을까 싶다. 그 결론치고는 답답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03/20180903034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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