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과 중국 부상에 맞서 韓·日 새로운 미래를 촉구
"외교·안보에 여야 구분없다" 정파 초월한 '원칙주의자'
자유민주·시장경제 신념으로 黨論에도 맞섰던 大人 그리워
 

정몽준 前 한나라당 대표
정몽준 前 한나라당 대표

내가 존 매케인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을 처음 만난 것은, 2013년 8월 방한 중인 그가 민주당의 화이트하우스 상원의원과 함께 아산정책연구원을 찾았을 때였다.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매케인은 해외순방 때 늘 민주당 의원과 함께 다녔다. 외교·안보에 여야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원칙 때문이었다.

차를 마시며 환담하던 중 매케인 의원은 자신이 월맹의 포로로 5년 넘게 잡혀 있으면서 가혹한 고문을 받았음에도 미국과 월남 간의 국교 정상화를 관철한 일화를 전하며 한·일(韓日) 간에도 새로운 미래를 열 것을 촉구했다. 북한이 핵무장하고 중국이 부상하는 가운데 민주주의 국가인 한·미·일(韓美日) 간의 관계가 강화되고, 특히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과거사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미국이 역사적으로 지나치게 일본 일변도의 동아시아 정책을 펴왔음을 지적하면서 동아시아 정치를 너무 단순히 보아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북한과 중국이 일당독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일본의 정치도 야당이 유명무실한 '1.5당 체제'인데 1당 체제와 1.5당 체제의 차이가 크다고 보는지 물었다. 이에 매케인 의원은 당황하면서 "일본에서 선거 부정이 있었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고 하자, 나는 "북한이나 중국에서도 선거 부정이 있었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고 답했다.

매케인 의원을 다시 만난 것은 2014년 초 워싱턴D.C. 방문 때였다. 초면에 논쟁을 벌였던 후라 그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 궁금했다. 우려와 달리 그는 법안 심의 중이었음에도 나와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상원 건물을 구석구석 안내해 주었다. 대인의 풍모를 실감할 수 있었다.
 
[기고] 매케인은 진정한 '自由'의 수호자였다
/일러스트=이철원

그는 한·미 동맹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지난해 9월에는 한국에 전술 핵을 도입할 것을 주장했고, 최근에는 한·미 훈련을 중단시킨 것을 비판했다.

매케인은 '독불장군'(Maverick)이라고 불릴 정도로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다. 월남전 때 포로로 잡힌 후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도 자신보다 먼저 잡혀온 동료들보다 먼저 나갈 수 없다는 원칙을 끝까지 고수했다.

그가 가장 중시한 원칙은 자유민주주의였다. 매케인은 지난 미국 대선 때 러시아가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여론을 조작한 혐의가 있자 이를 철저하게 수사할 것을 촉구하는 법안을 민주당과 여야 공동으로 관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자유민주주의 훼손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중시한 또 다른 원칙은 자유시장경제였다. 그는 2017년 9월, 미국 영토 간의 해운은 미국 국적의 배만 이용해야 한다는 '존스법(Jones Act)'을 폐기하기 위한 법안을 상정했다. 근본적인 이유는 시장경제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가 이미 2010년, 2015년, 그리고 작년 7월에도 존스법을 폐기하는 법안을 상정한 바 있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매케인은 여야 간 협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실천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1994년에는 공화당 의원들과 참전용사들의 반대에도 민주당과 함께 월남과 관계 정상화를 촉구하는 법안을 관철했다. 2002년에는 민주당의 파인골드 상원의원과 미국의 정치자금을 제한하는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지난해 오바마 전 대통령의 의료보험개혁안을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해체하려고 했을 때도, 매케인은 당론에 맞서 반대표를 던져 부결시켰다.

지난해 11월 투병 중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에 기고한 칼럼에 그는 이렇게 썼다.

"세계의 많은 나라가 경제적 폐쇄주의를 택하고 있으며 지역 통합보다는 보호주의를 선택하고 있다. 그들은 권위주의에 솔깃하기 시작하고 독재정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이들이 자유주의의 이상(理想) 그 자체를 포기함으로써 세계 질서 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의지 자체를 상실한 것 같다는 점이다."

그가 지난 25일 향년 82세로 영면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도처에서 도전에 직면하여 어느 때보다도 그의 목소리가 필요할 때다. 마치 가까운 형을 잃은 듯 가슴이 먹먹하다. 장례식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글로 대신하면서 미국 국민과 그의 가족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27/20180827036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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