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 국가의 힘 자랑을 김정은 위원장도 되풀이
보여주기式 정치 계속하면 북한 경제는 허송세월할 것
 

리 소테쓰 일본 류코쿠대 교수
리 소테쓰 일본 류코쿠대 교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를 맞아가며 평남 양덕군 온천지구를 둘러보는 사진이 최근 공개됐다. 얼마 전에는 신의주의 종이 생산 공장을 방문해 공장 안을 지켜보는 김정은의 바지에 흙먼지가 묻어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런 사진 몇장만 보고 '북한에 드디어 백성을 위한 지도자가 나타났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

그의 아버지 김정일은 당 사업을 시작한 1964년부터 2011년 사망 때까지 1만1300여곳을 찾았다. 거리로 따지면 42만3000㎞로 지구를 열한 바퀴 돌 수 있다. 그런데 그 47년 동안 북한 경제는 더 축소되고 피폐해졌다. 북한의 당시 전력 사정은 한국보다 좋았지만 지금은 한국 발전량의 5%도 안 된다. 현지 시찰로 경제를 혁신해 큰 성과를 내려던 시도는 효과가 없었다. 북한 자료를 보면 현지 시찰이 그 지방에 오히려 피해를 줬다.

2013년 12월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보위성) 특별군사재판소가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하기 직전 발표한 '사형 판결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놈(장성택)은 무엄하게도 대동강 타일 공장에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모자이크 영상작품과 현지 지도 사적비를 모시는 사업을 가로막았을 뿐만 아니라 마지못해 그늘진 한쪽 구석에 (사적비를) 건립하게 내리 먹이는 망동을 부렸다.'(같은 해 로동신문 12월 13일 자)

이 글에서 북한 지도자들이 현지 시찰을 하면 막대한 자원을 낭비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현지 시찰 후 화강암으로 사적비를 만들고 제일 눈에 잘 띄는 곳에 모셔야 하는데 장성택은 그런 관행을 무시하고, '김정은 시대가 됐으니 사적비 건립은 좀 줄여도 되지 않겠냐'고 안일하게 생각한 듯하다. 기념비를 좀 작게 만들어 눈에 잘 안 뜨이는 곳에 적당히 모시라고 한 지시가 죽을 죄목의 하나가 된 것이다.

더욱이 현지 시찰 내용을 보면 김정은은 선대 때보다 현실을 도외시한 즉흥 지시를 더 많이 한다. 김정은은 2015년 5월 대동강 자라 양식 공장 시찰시 새끼 자라 몇 마리가 죽었다고 불같이 화를 냈고 그 공장의 지배인을 총살시켰다고 한다. 지배인이 "전기 문제, 물 문제, 설비 문제가 걸려 생산을 정상화하지 못했다"고 설명하자 "말도 안 되는 넋두리"라고 질타했다. 지도자 일가와 특수 계층에 공급되는 식재료로 쓰이는 자라는 북한의 경제 건설과는 아무 상관없다.

최근 김정은이 순찰한 평남 순천시 주변의 운곡 종합 목장은 김일성 때부터 최고 지도자와 가족, 측근들을 위해 소·돼지·꿩고기 등 고급 육류를 생산하는 곳이다. 이곳 사료에 들어가는 사탕수수는 북한 주민들은 구경도 못할 정도로 귀하다. 김정은이 "운곡과 같은 사탕 수수밭을 전국에 널리 보급하라"고 지시했다는 기사가 로동신문에 실리자 "농경지도 부족한데 현실을 너무 모르는 황당한 지시"라고 비꼬는 주민들이 있다는 전언이다.

북한이 9월 9일(건국절)을 계기로 준비하는 대규모 매스 게임도 경제성이나 인민 생활 향상과는 무관하다. 10만명의 아동과 청년 학생들은 6개월을 밤낮없이 추위와 뙤약볕을 견뎌내며 대형 카드섹션의 픽셀 하나를 들고 하루종일 기계처럼 지정해준 똑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한다. 이들이 예술적 감흥이나 자아 완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목적은 하나, 전체주의의 힘을 과시하고 김정은의 권위를 자랑하기 위해서다.

이런 김정은을 "한국의 재벌 2~3세보다 낫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는데, 김정은의 통 치 스타일은 본질적으로 할아버지·아버지 때와 똑같다. 현지 시찰은 지도자의 완전 무결성과 전지전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매스 게임 등 대형 이벤트는 지도자의 권위와 전체주의 국가의 '힘'을 자랑하는 용도로 쓰였는데 김정은도 이를 되풀이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런 보여주기식 정치를 계속한다면 북한 경제는 앉은 자리에서 10년, 40년을 또 허송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26/20180826020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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