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남북 연락사무소 이견… 美 "中·러에 잘못된 신호 줄 우려"
사무소에 유류·발전시설 공급하려면 유엔·美제재 면제받아야
 

미 행정부가 개성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설치와 관련해 사실상의 경고성 메시지를 보낸 것은 처음이다. 연락사무소 운영 과정에 실질적으로 제재 위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는 데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보다 남북 관계가 지나치게 앞서가는 데 대한 미측의 부정적인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 고위 관리는 17일(현지 시각) 본지와의 통화에서 "대북 제재를 준수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합의"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 관리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교적 해법을 추구하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제재를 계속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도 미국을 어려운 상황에 빠뜨리는 활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제재 예외를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일단 개소식을 연 뒤 계속 미측 협조를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19일 전해졌다. 미국과 충분한 조율 없이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경제 협력을 가속화할 경우 한·미 공조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 "제재 공조 흐트러질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 17일 "(북측과) 개성공단 내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구성·운영 합의가 사실상 타결돼 이달 개소가 목표"라고 했다. 연락사무소 운영에 필요한 유류(油類)·발전시설 등의 공급을 위해선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2397호)와 미국 독자 대북 제재의 예외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 없이 유류 등을 공급하면 제재 위반국이 될 수 있어 우리 정부는 지난달 예외 인정을 요청했는데, 미국은 아직 '오케이' 사인을 내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측은 앞서 '이산가족 면회소 개·보수'의 경우 인도적 조치라는 이유로, '남북 군 통신선 복구'는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조치로 연료·물자·차량 이동 등에 관한 제재 예외를 인정했다. 하지만 대북 경협과 밀접하고 개성공단 재가동 논의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연락사무소는 이와 다르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방한한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이 남북 경협 기업들에 "너무 앞서나가지 말라"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 그는 이산가족 면회소 개·보수 등을 언급하며 "이것이 대북 제재 해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과 비핵화 협상 중인 미국으로선 아직 연락 사무소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진 않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했다. 특히 한국 정부의 제재 예외를 계속 인정할 경우, 비핵화 협상 상대인 북측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등 주변국에도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최근 VOA(미국의소리)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를 통해 '연내 남북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 등을 거론한 데 대해 "남북 합의가 한·미 동맹보다 중요하다는 공개 압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개소식에 100명 규모 방북단"

청와대와 정부는 4·27 판문점 선언의 합의 사항인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설치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남북 당국자가 상주하는 연락사무소를 남북 경협 사업과 미·북 대화 등을 촉진하는 '전진 기지'로 삼겠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구상이다.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앞으로 상호 대표부로 발전하게 될 남북 연락사무소도 사상 최초로 설치하게 됐다"고 했다. 연락사무소를 대사관 설치 전(前) 단계인 서울·평양 상주 대표부로 발전시키겠단 것이다.

연락소장직을 '차관급'으로 두는 방안도 북측과 협의 중인데, 박선원 국정원장 특별보좌관 등 정권 핵심 인사들이 물망에 올라 있다. 박 특보는 1980년대 반미(反美) 학생운동 조직인 '삼민투' 위원장 출신으로, 주한 미 문화원 점거 사건의 배후 인물로 지목돼 구속된 바 있다.

정 부 당국자는 개소식과 관련해 "연락사무소가 판문점 선언 이행의 상징적 사업인 만큼 의미 있게 치를 것"이라고 했다. 조명균 장관 등 100명 이상 규모의 방북단을 꾸려 개소식에 참석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미국과는 여전히 긴밀히 협의 중이며, 21일 국회에서 강경화 장관이 진행 사항을 보고할 것으로 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20/20180820001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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