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발표된 올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 성명에서 북한 비핵화와 관련, 지난해 성명에 담겼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가 빠지고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만 담겼다. 북한의 주장이 반영된 것으로, 우리 정부도 'CVID' 대신 '완전한 비핵화' 표기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 미·북 공동성명에 CVID 용어가 빠진 이후 국제 무대에서도 이 같은 기류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말하는 '완전한 비핵화'에는 핵 폐기 프로세스의 핵심인 '검증(Verification)' 개념이 포함돼 있는지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ARF 의장국 싱가포르가 4일 열린 27개 회원국 회의 내용을 정리해 발표한 이날 성명은 "북한이 약속대로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고 추가 핵·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는다는 맹세를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고 했다.

성명은 또 "유엔 안보리 결의의 완전한 이행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야기할 국제적 노력에 대한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했다.

매년 ARF에서는 의장 성명 작성 권한이 있는 의장국 외교장관을 상대로 최종 문안 발표 전까지 관련 당사국 간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진다. 북한의 도발이 극에 달했던 작년엔 '몇몇 장관은 한반도 CVID를 평화적으로 달성하는 데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다'는 형태로 사상 처음 CVID 문구가 들어갔다.

당초 우리 외교 당국은 이번 ARF 의장 성명에도 CVID가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달 초 공개된 성명 초안에 CVID가 담겨 있었고, ARF 직전 열린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에서도 'CVID를 끌어내기 위한 유엔 안보리 결의와 국제사회의 노력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성명이 채택됐다.

하지만 막판에 상황이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5일 ARF 의장인 비비언 발라크리슈난 싱가포르 외교장관과 만찬을 하면서도 'CVID 삭제'를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화 외교장관도 'CVID'를 '완전한 비핵화'로 바꾸는 데 사실상 앞장섰다. 강 장관은 5일 기자들과 만나 "남북, 북·미 정상회담(선언·성명)의 표현을 그대로 딴 '완전한 비핵화'가 우리의 입장임을 ARF에서 밝혔다"고 했다. 의장 성명이 나온 뒤 외교부는 "ARF가 균형된 표현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이해된다"고 했다. 게다가 미국도 CVID 용어를 굳이 고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과 협상을 이어가려는 미국은 최근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란 새 용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한·미가 안보리 결의에 명기된 북한의 법적 의무인 CVID를 너 무 쉽게 양보한 측면이 있다"며 "북한에 '한·미는 북한 CVID를 관철할 생각이 없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ARF 성명 문안은 매년 상황에 맞게 바뀌기 때문에 내년에 다시 CVID가 들어갈 수도 있지만, 한·미와 북한 간에 '완전한 비핵화'에 관한 개념 정의가 아직도 제대로 안 돼 있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07/20180807002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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