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추가제재 이어 ARF서 北압박

미국이 대북 독자 제재 대상을 추가 발표한 데 이어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이행을 강력 촉구했다. 6·12 미·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북한의 석유 밀수입, 석탄 밀수출 문제 등이 불거지자 공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ARF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4일 기자회견을 갖고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비핵화한 북한'이라는 세계의 목표를 손상하는 어떤 위반도 미국은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라며 아세안과 중·러에 제재 이행을 강조했다. 특히 "러시아가 북한과의 합작회사 설립을 허용하고 북한 노동자들에게 신규 허가를 내주는 것은 안보리 결의 2375호 위반"이라고 했다. 전날 미 재무부는 북한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인물과 거래한 러시아 아그로소유즈 상업은행 등 기관 3곳, 조선무역은행 모스크바 주재원 리정원을 독자 대북 제재 대상에 추가로 지정했다.
 
회의장서 서류봉투에 넣어 전달된 트럼프 친서… 그걸 바로 열어본 리용호
회의장서 서류봉투에 넣어 전달된 트럼프 친서… 그걸 바로 열어본 리용호 - 성 김(오른쪽) 주필리핀 미국 대사가 4일(현지 시각)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 도중 리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다가가 서류 봉투를 전하고 있다(위 사진). 사진 오른쪽 아래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봉투 안의 서류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라고 밝혔다. 지난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의 답장이란 것이다. 친서를 전달받은 후 리용호가 자리에 앉아 봉투 안쪽을 살펴보고 있다(아래 사진). 전직 외교관은 “세계 각국 외교 사절과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상의 친서를 전달하는 것이나, 이를 즉석에서 확인하는 것 모두 외교 상식과는 거리가 있는 행동”이라고 했다. /연합뉴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 비핵화와 관련, "시간이 걸리겠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약속대로 그에 의해 궁극적 비핵화 시간표가 정해질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강경 기조에 반발했다. ARF에 참석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연설에서 "미국이 우리의 우려를 가셔줄 확고한 용의를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한 우리만이 일방적으로 먼저 움직이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ARF 참석차 지난 3일 싱가포르에 입국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4일 각국 외교장관 연설에 앞서 열린 기념 촬영 행사에서 만났다.

전날 환영 만찬에서는 미측 불참으로 만남이 불발됐었다. 폼페이오 장관이 다가가 악수를 청했고 두 사람은 잠시 환담을 나눴다. 기념 촬영 후에는 성 김 주(駐)필리핀 미국 대사가 리용호에게 '김정은 친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답신을 전달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하지만 곧이어 열린 ARF 연설에서 리용호는 '미·북 공동성명의 균형적·동시적·단계적 이행'을 주장하며 미국을 향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날 오전 폼페이오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이행을 강조하면서 북한에 '비핵화 시간표'를 촉구한 데 반발한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다른 일정 때문에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리용호 '美 제재 유지, 종전선언 후퇴' 규탄

리용호는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해 우리가 핵실험과 로켓 발사 실험 중지, 핵실험장 폐기 등 주동적으로 먼저 취한 선의의 조치들에 대한 화답은커녕 미국에서는 오히려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조선반도 평화 보장의 초보의 초보적 조치인 종전선언 문제에서까지 후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측이 미·북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미군 유해 송환 등을 이행한 만큼 이제 미측이 대북 제재 완화와 연내 종전선언 채택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악수하는 美北외무… 쳐다보는 강경화
악수하는 美北외무… 쳐다보는 강경화 - 마이크 폼페이오(맨 왼쪽) 미 국무장관이 4일(현지 시각) 싱가포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에 앞서 가진 기념사진 촬영에서 리용호(가운데) 북한 외무상과 악수하고 있다. 오른쪽 위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리용호는 "올 9월에 맞이하게 되는 공화국 창건 70돌 경축 행사에 다른 나라들이 고위급 대표단을 보내지 말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과 같은 극히 온당치 못한 움직임들까지 나타나고 있다"고도 했다. 다만 원색적인 대미(對美) 비난은 피했다. 향후 미국과 대화를 이어나가겠다는 의도로 해석됐다.

미 CNN방송은 "폼페이오 장관과 리 외무상의 '친근한 대화'에도 불구하고 북한 비핵화를 압박하기 위한 경제 제재를 둘러싸고 계속되는 긴장의 신호들이 감지됐다"고 했다. 당초 미측은 ARF를 계기로 미·북 외교장관 회담을 갖자는 뜻을 북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 가능성에 대비해 미·북 정상회담 실무 협상을 이끌었던 성 김 대사를 대표단에 합류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북측이 받지 않아 외교장관 회담은 끝내 무산됐다.

◇北과 회담 못한 姜외교 "미·중과 종전선언 협의"

리용호는 한국·미국과의 외교장관 회담은 거부했지만, 3~6일 ARF 개최국 싱가포르와의 별도 회담을 포함해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인도·태국·EU·뉴질랜드 등 총 12국 대표와 양자 회담을 가졌다. 회담에서 연내 한반도 종전 선언과 대북 제재 완화에 대한 지지를 강조했다. 리용호는 6일 이란도 방문할 예정이다.

하지만 미국은 ARF를 계기로 열린 한·미, 미·일 회담 등에서 '북한 비핵화 조치 전에 종전선언과 제재 완화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미·북 외교장관 회담 가능성이 열려 있던 상황에서 러시아 은행 등에 대한 대북 독자 제재를 추가 발표하고 각국에 엄격한 제재 이행을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세안 등 각국에 엄격한 제재 이행을 주문한 것도 마찬가지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양측의 불협화음은 북한 핵무기 해체에 대한 보상 속도를 양측이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관한 간극에서 상당 부분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5일 ARF 결산 브리핑에서 "(3일 ARF 환영 만찬 때 리용호와) 종전선언에 관한 의견 교환이 있었다"며 연내 종전선언 추진 방침을 강조했다. 강 장관은 "(종전선언과 관련해) 계속 협의하고 있으며, 미국·중국과도 상당한 협의가 있었다"며 "다음 달 유엔 총회를 좋은 계기로 본다"고 했다. 강 장관은 올해 ARF 의장 성명과 관련, "남북, 북·미 정상회담 표현을 그대로 따서 '완전한 비핵화'가 우리 입장이라고 했는데, 대다수 국가가 CVID를 언급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06/20180806001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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