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석 파리특파원
손진석 파리특파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 달 유럽에 와서 독일에 한 방 먹였다. 그는 "독일이 가스관 사업으로 러시아에 수십억달러를 갖다주고 러시아의 포로가 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트럼프가 언급한 사업은 '노르트 스트림 2'라는 가스관 설치 공사이다.

독일이 러시아에서 천연가스를 들여오려고 만드는 1225㎞짜리 가스관이다. 원전을 폐기하고 신재생에너지로 이행하는 기간을 30년 이상 잡고 있는 독일이 그사이 안정적인 에너지원으로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점찍은 것이다. 미국의 견제에도 메르켈 총리는 꿈쩍 않고 내년 완공을 독려 중이다.

미·독·러 3국 간 천연가스 신경전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독일이 탈원전 추진에 있어 지정학적으로 좋은 여건이라는 점이다. 에너지 정책 전환기에 필요한 자원을 주변국에 파이프를 꽂아 어렵지 않게 들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와 친(親)환경단체들은 '선진국도 원전을 버린 대표 사례'로 틈만 나면 독일을 꼽는다. 하지만 한반도가 독일처럼 주변국에 파이프를 대고 에너지를 쭈욱 빨아들일 수 있는 곳인가.

독일이 우리보다 유리한 점은 또 있다. EU 통합 전력망을 통해 인근 9개국과 송전선을 연결해 놓고 있다. 그래서 항시 전기를 수출하고 수입한다. 2016년의 경우 전체 수입량의 32%가 원전 대국(大國) 프랑스에서 왔다. 국경 바로 너머의 프랑스 원전에서 전기를 끌어오기 때문에 "탈원전이라고 하기에 궁색하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쉽게 말해 심각한 전력난을 겪더라도 전기 수입을 늘리면 어렵잖게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유사시에도 전기 공급이 끊어지지 않는 확실한 '보험'을 갖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사방이 가로막힌 우리는 전력이 바닥나면 어디에 기댈 것인가. 중국, 일본, 북한에 손을 벌릴 것인가.

독일처럼 비싼 전기 요금을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기자는 파리에서 올 6월 전기요금으로 68유로(약 8만8000원)를 냈다. 만약 베를린에 살고 있다면 95유로를 부담해야 한다. 가정용 전기료가 독일이 프랑스보다 40% 정도 비싼 탓이다. 독일은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비용을 전기요금 인상으로 해결하고, 독일 국민은 유럽 최고 수준의 전기료를 감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탈원전 비용이 현실로 다 가와 지금보다 훨씬 비싼 전기료를 내야 할 때 국민의 반응이 어떨지 의문이다.

여러 사정을 고려해보면 독일은 우리보다 탈원전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여건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적잖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우리는 그걸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탈원전을 놓고 독일을 뒤따라가는 것이니 안심하자는 건, 뱁새가 무작정 황새 꽁무니를 쫓겠다는 것과 매한가지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30/20180730027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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