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大고려전'에서 전시 추진
 

유석재 기자
국립중앙박물관은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올해 말 여는 '대고려전'에서 북한 문화재 '왕건상(像)' 전시를 추진하고 있다. 이 나신상(裸身像)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조선일보의 1997년 10월 3일자 1면, 김태익 기자의 특종 보도 '개성 왕건릉에서 나온 청동 등신상'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역풍이 만만찮았다. "세상에 나체 군주상이 어디 있느냐" "군주상이 아니라 불상이다"는 반발이 쏟아졌다. 논란이 된 건, 관(冠) 말고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의 배꼽 아래, 보일 듯 말 듯 미세하게 처리된 중요 부위(길이 2㎝)였다. "어딜 봐서 저 동상이 부인 29명에게서 자녀 34명을 낳았던 고려 태조라는 것이냐"며 흥분하는 사람도 있었다.
 
1992년 개성에서 발견된 왕건상.
1992년 개성에서 발견된 왕건상. /지식산업사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반전(反轉)이 일어났다. 2006년 6월, 서울대 국사학과 노명호 교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 왕건상 있잖습니까? 연구를 해 봤더니… 그거 황제상이었습니다!" 소식을 전해 들은 김태익 기자는 "오보는 아니었군" 하며 빙그레 웃었다.

노 교수의 조사 결과, 동상이 쓰고 있는 관은 위로 가늘게 솟구친 띠 형상인 '양(梁)'이 모두 24개로, 중국 황제들만 썼다는 '24량 통천관(通天冠)'이었다. 고려는 개국부터 13세기 중반까지 '황제국'을 자처했고, 당시 군주는 왕보다 높은 '황제' '천자'였다는 것이 실물로 확인된 셈이다. 그렇다면 왕건릉에서 나온 이 황제상은 왕건상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밝혀졌다. 이 동상은 1992년 개성의 현릉(왕건릉) 확장 공사 도중 지하 2m 아래 석판 밑에서 나왔는데, 굴착기 삽에 걸려 오른쪽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몸 곳곳이 찌그 러진 상태였다. 동상이 '벌거벗은 임금님'인 것은 그 위에 비단옷을 입힐 것을 전제로 만드는 고구려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럼, 음경이 아기만 한 이유는? 전생에 몸을 삼가 색욕을 멀리했다는 의미였다. 2006년 서울에서 한 차례 이 동상을 전시했을 때 남북 합의에 따라 일부를 흰 천으로 가렸는데, "왜 졸지에 문화재를 음란물처럼 만드느냐"는 항의가 나왔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25/20180725038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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