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조하는 전방 군인들… 장관과 부하는 막가는 싸움
정신적 무장해제는 진행 중… 이게 지금 국군의 실상
이것도 군대라면 세계 진짜 군대에 대한 모욕
 

양상훈 주필
양상훈 주필
한 예비역 군인이 "큰일"이라고 했다. 최전방에 근무하는 지휘관이 "선배님, 지금 우리 구호는 '가족과 함께'입니다"라고 전해왔다는 것이다. '필승' '단결'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라는 것인데 군대도 주 52시간 근무제로 '저녁이 있는 삶'이 됐다는 뜻인지 뭔지 언뜻 알기 어려웠다. 알고 보니 갑자기 북한이 위협 세력이 아닌 존재로 둔갑하고, 국민은 '이제 군대 안 가도 된다' '통일되면 북핵은 우리 것'이라 하고, 한·미 훈련이 무기 연기되고, 국군 단독 훈련도 권장되지 않는 분위기에서 군인들이 서로 얼굴을 보며 '오늘도 가족과 함께'라고 쓴웃음을 짓는다는 것이다. 한 지휘관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고 한다.

지금 국군에서 군사력이나 전투 태세 강화를 위한 조치는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 훈련 중단은 한가지 예에 불과하다. 핵·미사일 방어를 위한 3축 체계도 중단·연기되고 있고 흐지부지될 조짐이다. 북이 핵·미사일을 포기할지도 알 수 없지만 다른 외국의 위협은 그냥 당해도 되나.

어느 자리에서 '북한이 핵을 버릴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전문가에게 '당신이라면 핵을 버리겠느냐'고 물었더니 '나는 안 버리겠지만 김정은은 버릴 것'이라고 한다. 김정은이 정말 핵을 버리면 '동화(童話)'가 현실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 기적을 기정사실로 믿고 마음속 무장부터 해제하고 있다. 군인들은 어리둥절한 채 이제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있는 삶'을 보내는 거냐, 그런데 이래도 되는 거냐고 한다.

저출산 때문에 그냥 있어도 병력 자원이 줄어들게 돼 있다. 심각한 사태다. 정부는 이에 대처하기 위해 군 복무 기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복무 기간을 줄인다고 한다. 안보보다 대중 인기를 우선한 결정이다. 우리가 이스라엘군보다 복무 기간이 짧아야 하는 나라인가. 당장 병력 감소에 가속도가 붙게 된다. '첨단 기술'로 병력 부족을 메꾼다고 하지만 군 작전과 한반도 전장 상황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환상에 가까운 이상론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발전된 군사기술 도입을 게을리하면 안 되지만 소규모 작전 아닌 대규모 전면전에서 기술이 병력을 대체하는 것은 앞으로 수십년 안에는 이뤄질 수 없다. 특히 지상전에서는 더 그렇다.

우리 공군이 마침내 보유하게 되는 스텔스 전투기 F-35 출고 행사는 북한을 자극한다고 격하됐다. 이 전투기는 북한만이 아니라 주변 강대국 견제용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 전략 무기다. 그래서 80억달러에 달하는 국민 혈세가 투입됐다. 돈을 준다고 아무나 살 수 있는 전투기도 아니다. 그 노력이 결실을 보는데 천덕꾸러기처럼 됐다. 북핵 쇼 한번 했다고 수도권을 방어하는 핵심 부대의 후방 철수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DMZ 우리 GP 철수를 추진한다고만 발표하고 '북 GP와 함께'라는 핵심 부분은 기자들이 물어보면 대답하는 식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김정은 선전 방송 비슷하게 바뀌더니 그나마 다 없어졌다고 한다. 헌법재판소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처벌을 위헌이라고 했다.

최악 폭력 집단의 위협을 받고 있는 나라가 안보 사치에 빠졌다. 김정은에 대한 신뢰도와 호감도가 올라가 야당 대표를 능가할 지경이다. 인기 있는 시사평론가는 "김정은만 한 대기업 2·3세가 있느냐'고 한다. 집요하고 무서운 적폐 청산을 보면 정부가 우리 사회의 보수보다 북한 정권을 더 좋아하고 신뢰하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현역 대령 한 사람에게 기무사의 '쿠데타 음모'에 대해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지금 국군은 여당과 야당이 합의해 계엄을 해달라고 해도 어려울 겁니다. 후환을 감당할 지휘관이 없고, 그럴 의지나 용기가 없고, 따를 병력이 없습니다." 샐러리맨화 했다는 군대가 '쿠데타'라니, 책상머리 서류라는 게 맞을 것이다. 기무사 계엄 관련 문건을 수집한다며 동원한 기관의 이름은 '전비태세 검열단'이다. 전투 준비를 검열해야 하는 기관이 문건을 모으고 있다. 급기야 국방장관과 부하 군인들이 국회에 나와 TV 앞에서 대놓고 싸운다. 완전히 정치판이다. 이것도 '군(軍)'이라면 세계의 진짜 군대에 대한 모욕이다.

실제 북핵 폐기가 성공하고 한반도에 평화가 온다 해도 국가 보위라는 국군의 사명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우리 주위에 어떤 나라들 이 있는지 지도를 10초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그런 군대가 5년 정권 한 번 바뀌었다고 한국 정치 뒤집히듯 뒤집혀 정신적 무장해제 상태로 가고 있다. 지휘부가 마비된 가운데 최전방 군인들은 '가족과 함께'라고 자조(自嘲)한다. 지금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국군은 와해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비상사태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살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25/20180725037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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