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생활용 전기도 없는데 호텔 벽면에 조명장치 10만개 설치
실리보다 겉모습에만 집착하면 김정은 '北의 덩샤오핑' 될 수 없어
 

리 소테츠 일본 류코쿠대 교수
리 소테츠 일본 류코쿠대 교수
얼마 전 북한을 다녀온 영국 건축가 올리버 웨인라이트씨는 평양시와 주변에 있는 거대하고 화려하게 꾸민 건축물들을 둘러보고 처음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이내 건물마다 빠짐없이 김일성·김정일 동상이 세워져 있고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이는 거대한 무대 세트임을 알아챘다. 그는 이런 건축물에 대해 '독재자 패션(dictator chic)'이라고 명명했다.

구체적으로 김정은 시대에 만든 동양 최대의 마식령 스키장과 평양의 맨해튼이라 불리는 여명거리 초고층 아파트 단지, 문수대 물놀이장 등은 '김정은 패션'이라 부를 만하다. 중국 진나라 시황제 이래로 독재자들은 크고 위압적인 축조물을 좋아한다. 스케일은 작지만 북한의 지도자들도 크고 화려한 건축물을 선호한다.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북한은 옛 소련을 흉내 내 거대한 건축물을 많이 지었는데 그 가운데서 제일 가관은 만수대 언덕에 세워진 김일성 동상이다. 세계 최고 크기를 자랑한다는 높이 23m의 이 동상은 금불상처럼 표면에 황금을 입혔다. 동체는 동을 사용했는지 그보다 더 무거운 금을 사용했는지 8000만 조선 민족의 몸무게에 해당한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한때 마오쩌둥 주석 동상 건립 붐이 일어났었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얼마 안 된 1967년 5월, 베이징 칭화대학 부속중학교 홍위병들이 대학 구내에서 제일 아름다운 건물이던 청나라 시대의 대문을 부수고 그곳에 마오쩌둥 동상을 세웠다. 그 후 약 3년 동안, 2000개 정도의 마오 동상이 각지에 세워졌다.

마오쩌둥 자신은 건국 초기만 해도 동상 제작에 부정적이었다. 건국 초기 선양(瀋陽)시가 자신의 동상을 세우려고 하자 마오는 "동상은 풍자적 의미밖에 안 된다(只有諷刺意義)"며 반대했다.

실용주의자인 덩샤오핑도 이런 겉치레에 반감을 갖고 있었다. 1978년 북한을 방문한 덩샤오핑이 금빛으로 번뜩이는 김일성 동상을 보고 그 자리에서 북한 간부를 향해 이 동상에 중국 인민이 지원한 돈이 얼마 들어갔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 후 중국은 북한에 대규모 무상 원조는 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 마오쩌둥의 동상은 개혁·개방이 잘 안 된 곳에만 간혹 남아 있다. 중국에서는 한때 "(마오쩌둥) 동상이 있으면 개혁·개방이 안 된다"는 말이 유행했었다.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일부 '식자'들은 스위스 유학 경험이 있는 김정은에 대해 실리를 중시하는 지도자이며 북한의 덩샤오핑이 될지 모른다는 기대를 걸고 있다. 그 증거로 싱가포르 나들이에 중국 국기가 새겨진 항공기를 거리낌 없이 탔고 언론 노출도 개의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싱가포르 나들이에서 보여준 '김정은 패션'에서 확인된 것은 김정은도 실리보다 겉치레를 좋아하고 외국의 '원조'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북한식 사고방식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다. 이틀 정도면 끝낼 여행길에 비행기를 석 대나 동원했고 무게 4t이나 되는 벤츠까지 가져갔다. 싱가포르 정부가 공짜로 제공한다고 하자 미국 대통령보다 더 비싼 방을 썼다.

평양 시내에서 제일 높은 건축물로 알려진 105층의 류경 호텔은 착공하고 30년이 넘도록 아직 내부 장식도 마치지 못했는데 정작 겉치레부터 시작했다. 지금 '호텔(외벽) 전체가 그대로 대형 텔레비전 화면인 듯, 움직이는 야경을 형상화하기 위해 건물 표면에 무려 10만 개의 점광원(LED 조명장치)을 부착하고 있다'고 6월 22일 자 '오늘의 조선'은 전하고 있다.

주민들의 생활용 조명에 필요한 전기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북한이 평양 야경(夜景) 만들기에 몰입하고 있다니,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도 북한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진정으로 변하려면 이런 사고방식, 겉모양을 중시하는 '패션'부터 고쳐야 한다. 주민들이 가슴에 달고 다니는 휘장을 내려놓게 하고 수령 동상을 줄이든가 없애는 용기가 없는 한, 김정은은 북한의 덩샤오핑이 될 수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22/20180722019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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