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취임 후 처음으로 국가정보원 청사를 찾아 업무보고를 받았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국정원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성공시킨 주역이 됐고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이 됐다"고 했다. 국정원은 북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최일선 안보 기관이다. 북한 위협 동향 탐지와 간첩 적발·체포가 국정원 본연의 임무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처럼 남북대화가 진행되는 때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북이 무슨 의도를 갖고 어떤 작전을 짜고 있는지 파악해야 하는 게 국정원이다. 대통령 방문에 맞춰 제막식을 한 국정원 청사 석판에 새겨진 '이름 없는 별' 상당수도 대공 방첩 임무를 수행하다 희생된 요원들이다.

국정원이 남북대화를 물밑에서 지원할 수는 있다. 북한과 같은 집단과의 협상이 일반적 외교 교섭과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북 교섭도 국정원 본연의 임무를 다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이다. 근래 국정원은 북한 위협 동향 탐지는 아예 도외시하거나 포기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국정원장은 정보기관 수장이라기보다는 남북대화를 위해 이 자리를 맡고 있는 듯하다. 대북 교섭에 공개적으로 앞장서왔다. 4·27 남북 정상회담 때 배석한 것은 물론 현장에서 감격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은 4·27 정상회담 한 달 전 북한 특별열차가 중국에 들어간 뒤에도 김정은 방중(訪中) 같은 북핵 사태의 사활이 걸린 정보는 확인하지 못했다. 무엇이 본업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국정원은 간첩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연말 이런 내용을 담은 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야당이 "간첩 수사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천덕꾸러기가 돼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간첩 수사 요원들의 사기가 어떨지는 짐작할 수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국보법 입건자(28명)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평균 입건자 수(78.9명)의 3분의 1 수준이다.

과거 국정원이 저지른 국내 정치 개입과 간첩 수사 증거 조작 같은 행태는 뿌리 뽑아야 한다. 그러나 외적의 위협 동향을 사전에 탐지해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활동은 더 강화돼야 한다. 대통령과 모든 정부 부처가 "북한이 변했다"고 외쳐도 국정원만은 마지막까지 그 뒤에 놓인 안보 위험성을 탐지하고 경고음을 울려야 한다. 지금 한국에는 경고음을 울릴 기관이 단 하나도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22/20180722019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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