河英善

임동원 특사가 평양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서 남북의 6개 공동합의 사항을 발표했다. 발표를 들으면서 궁금한 것은 지난해 11월 제6차 장관급회담이 결렬된 이후 얼어 붙었던 남북관계에 정말 봄 같은 봄이 찾아올까 하는 것이다. 북한은 임동원 특사의 평양방문을 수락한 이유를 “민족 앞에 닥쳐온 엄중한 사태와 관련하여… 6·15북남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을 존중하고 민족끼리 공조해 나갈 의지가 있는가에 대한 명백한 대답을 들어 보려는 데 있다”고 강조하였다.

북한이 강조하고 있는 틀에 따라 남북의 합의내용을 해체하면 엄중한 사태를 다룬 1항과 남북의 대화와 협력사업들을 다룬 2~6항으로 나눠볼 수 있다. 그리고 2~6항의 성공적 추진여부는 1항의 노력이 얼마나 가시적 성과를 거두는가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진정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남북의 대화와 협력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핵심적으로 공을 들여야 할 것은 엄중한 사태의 해결이다. 긴장해소의 기반없는 대화와 협력사업의 노력은 끊임없이 파도에 허물어지는 사상누각의 위험성을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한반도의 엄중한 사태를 쉽사리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북한과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오해의 이중성 때문이다. 북한당국은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을 조심스럽게 분석해왔다. 특히 9·11 테러사태와 10·7 대테러전 이후 북한은 미국의 대북정책을 ‘악의 축’과 같은 군사적 시각으로 보아야 할지, 수령과 인민을 분리하여 제도변경을 시도하는 정치적 시각으로 보아야 할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과거 클린턴 행정부의 경우와 달리 2단계 대테러전의 틀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보다 쉽게 협상전에서 정치전으로, 그리고 군사전으로 전환될 수 있는 위험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한반도의 엄정한 사태의 원인을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서 찾는다면, 북한은 미국의 ‘대조선고립압살책동’에서 찾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엄중한 사태를 극복하기 위하여 생존의 최종 담보로 생각하는 대랑살상무기를 미국의 기대와는 달리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잭 프리처드 미 대북교섭 담당대사의 방북을 계기로 북미대화 노력이 구체화되겠지만 미국은 북한의 예상보다 훨씬 강경한 2단계 대테러전의 대북정책을 추진하고, 북한은 미국의 예상보다 훨씬 끈질긴 반외세투쟁의 대미정책을 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대테러전과 북한의 반외세투쟁의 어우러짐은 북한과 미국으로 하여금 쉽사리 엄중한 사태의 해결을 모색하는 대신에 힘겨운 벼랑 끝 외교의 순서를 밟아서 타협점을 찾아 나서게 될 것이다. 북미의 벼랑 끝 외교는 우리에게 두 가지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우선, 남북의 대화와 협력사업에 어려움을 가져다 주고 다음으로는 민족공조와 국제공조의 갈등의 심화를 겪게 만들 것이다.

한반도에서 반복돼온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민족공조와 국제공조의 조화라는 어려운 과제를 풀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북한이 2단계 대태러전쟁의 목표가 되는 대량살상무기체계를 포기하는 대신에 한국과의 공조하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국제공조를 추진해야 한다. 다음으로 미국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체계를 2단계 대테러전쟁의 틀에서 다루는 경우에 이러한 조치가 한반도 평화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 평화적 방법으로 이루어지도록 보다 긴밀한 국제공조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의 기반 위에 남북의 대화와 협력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때 한반도의 진정한 봄은 소리없이 찾아올 것이다./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