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駐韓미군·나토 문제도 동맹보다 방위비 관점에서 접근
北核 진전 없이 미군 철수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막아야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지난주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3차 방북 이후 워싱턴에선 북한 비핵화 협상 진전에 대한 전망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줄 작은 선물 하나 마련해놨다"는 말만 남기고 브뤼셀로 떠났다.

트럼프의 관심은 나토(NATO) 국가들의 방위비 분담 증액 압박으로 넘어갔다. 트럼프는 젊은 시절 아버지 사업을 함께 하면서 임대료 걷는 일의 어려움을 배웠다. 그는 자신의 책 '거래의 기술'에 "임대료를 걷는 일은 체력 면에서 힘이 든다. 돈을 내지 않으려는 사람들로부터 임대료를 받기 위해서는 머리보다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트럼프에겐 미국 보호를 받으면서 방위비는 더 내지 않으려는 동맹국들이 임대료 안 내고 버티던 예전의 그 세입자들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방위비 분담 협상을 진행 중인 한국에 대해서도 '방위비를 조금밖에 안 내는 나라'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돈 많이 들어가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부터 중단시켰다.

한·미 양국은 모두 "미·북 비핵화 협상에서 주한미군은 의제가 아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6·12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지금 논의 대상이 아니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되길 원한다"고 했다. 그 후 트럼프 행정부의 전·현직 관리들로부터 "왜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 보고서를 썼다"는 '고백'을 들었다. '주한미군을 미국으로 데려오면 오히려 더 비용이 많이 든다'든지, '주한미군은 북의 위협만이 아니라 중국 견제의 전략적 의미가 더 크다'는 이유를 댔다고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제거가 시급하다면서 트럼프는 왜 자꾸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하는 걸까. 트럼프월드의 국제정치학은 전통적인 미국 국제정치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국가 안보 전략관은 동맹을 중심축으로 국제 질서를 관리했던 틀에서 벗어나 있다. 동맹이 망가지면 그것이 곧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핵, 테러처럼 직접적인 위협만을 국가 안보 위협으로 본다.

'트럼프표 국제정치학'은 그의 지지층이 갖는 불안을 반영한다. 세계화에 뒤처진,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백인 노동자층이 주류인 트럼프 지지자들은 현재와 미래의 경제 상황에 깊은 불안을 느끼고 있다.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이민자들을 막기 위해 담장을 높이 올리고 싶어 하고, 외국 지키는 데 내 자식과 세금을 보내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트럼프는 미국을 미국답게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했던 '이민'과 '동맹'의 코드를 해체하고 있다. 트럼프가 동맹의 의미를 모르고 그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그가 완전한 비핵화가 얼마나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인지 이해하지 못할 만큼 순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트럼프는 완전한 비핵화가 되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 체제를 만들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줄이는 방식의 '미국 우선' 정책을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워싱턴의 한 북한 전문가는 "이제부턴 북한에 더 이상 내주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일단 동맹부터 보호하라"는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위해 한발도 전진하지 않았는데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카드를 던져버린 트럼프를 보면, 한국이 당장 할 일은 비핵화 진전과 연동하지 않은 채로 동맹이 해체 수순을 밟는 듯한 길로 가는 것을 막는 일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동맹은 변해왔고 변해야 한다. 주한미군이 필요없는 날도 올 것이다. 하지만 북한 비핵화엔 진전이 없는데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부터 서두르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막아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12/20180712039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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