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비핵화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성공'으로 포장 꾀하지만 실체는 달라진 것 없어
 

이철민 선임기자
이철민 선임기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7일 북한을 떠난 뒤, 곧 나온 북한의 거친 성명을 접하면서 한 트윗이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2일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 돌아오자마자 올린 "더 이상 북한의 핵 위협은 없다"는 선언이다. 협상의 대가(大家)를 자처하는 그는 관심법(觀心法)에도 정통한 듯, 회담 직전에는 "5초만 만나면 '좋은 일이 일어날지'를 금세 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방북 회담에서 북한은 '약속'뿐인 비핵화까지 많은 단계로 나눠 매번 보상을 받겠다는 종전 전술에 변함이 없음을 드러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선 굵고(in broad strokes) 큰 그림 그리는' 스타일이 디테일 앞에서 얼마나 공허하며, 정상회담에서 모호한 합의문이 남긴 빈칸을 채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보여줬다.

2007년 TV 유명 인사 시절의 트럼프는 "그럴듯한 말이나, 비행기에서 내려 손 흔들고 독재자랑 같이 앉고 다시 손 흔들고, 비행기에 타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행사가 아니라 협상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업가 트럼프의 협상 이력(履歷)을 연구한 많은 미국 전문가는 "그가 선(線) 굵은 스타일로 적잖은 실패를 겪었다"고 분석한다. 그가 분명히 딜(deal)에 성공한 것은 뉴욕시의 그랜드하이야트 호텔을 사들여 개조하고 트럼프타워를 세웠을 때처럼 수많은 부동산 업자, 임대인, 뉴욕시 관련 부서, 주변 건물들의 퍼즐처럼 얽힌 이해(利害)관계를 본인이 달라붙어 하나하나 풀어나갔을 때라고 한다. 이후 그가 책과 TV 쇼로 이름을 날리면서 '큰 그림'을 그렸던 항공 사업, 프로풋볼 구단 운영, 카지노 등은 다 좌초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는 많은 영화의 배경이 된 뉴욕시의 맨해튼 호텔을 최고 호가(呼價)보다도 6000만달러를 더 주고 산 적이 있다. 그는 "비경제적 딜이지만, 이 호텔은 반드시 사야만 하는 모나리자 같은 걸작"이라고 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지금, 트럼프 대통령에겐 어쩌면 이런 '모나리자'가 필요하지 않을까. 많은 여론조사는 상·하원 모두 민주당이 근소하게 앞설 것으로 본다. 트럼프가 기댈 수 있는 언덕은 올해 4%까지도 내다본다는 미국 경제 호황(好況)이다. 그러나 미국은 얼마 전부터 중국·캐나다·멕시코·유럽연합(EU) 등 최대 무역국 1~4위와 모두 무역 전쟁에 들어갔다. 미국이 준비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7월 11~12일)을 앞두고도 "유럽이 무역 적자 1510억달러와 나토 부담금으로 우리를 죽인다"고 각을 세운다.

공동 목표를 가진 우방국들마저 제로섬(zero-sum) 게임의 적수(敵手)로 내몬 상황에서, 북핵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에서 '성공'으로 포장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하지만 성공의 성격이 문제다. 핵 버튼 크기와 성능을 자랑하며 북한을 압박했던 그는 싱가포르 회담 직후 그 자리에서 바로 "비핵화는 과학적, 기계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기자들의 계속된 질문에 "곧 밝히겠다"던 미국 정부의 북(北) 비핵화 시간표도 슬그머니 "제시하지 않겠다"로 바뀌었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방북 당일엔 "오바마 때 5000만명이 죽는 전쟁 직전까지 갔는데, 내가 취임하고 지난 8개월간 북한이 단 한 차례도 미사일 발사, 핵실험을 안 했다"며 그간의 '성과'를 직접 자랑하기도 했다.

북핵 사태가 어떻게 포장되든, 실체가 달라진 것은 없다. '불바다' 발언이나 폭침·포격 같은 군사 도발이 없다고 '가짜 평화'에 도취하기엔, 북핵은 우리 생존을 위협하는 최대 위험 요인이다. 국제사회의 총체적 경제 제재를 받는 북한에, 밑도 끝도 없는 경제 협력을 앞다퉈 제안할 때는 더더욱 아니다. 그나마 태평양 어느 쪽에서든 '노벨상(賞)' 얘기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게 다행스럽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08/20180708023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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