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비핵화 시간표 강도적 요구" 美 "우리가 강도면 세계가 강도"
유해 송환·동창리 발사장 폐쇄 문제도 실무협의 여는 것만 합의
 

지난 6~7일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1차(4월 1일)·2차(5월 9일) 방북 때와 달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지 못했다.

또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통일전선부장)과 총 9시간에 걸친 고위급 회담에서도 비핵화 시간표·검증 등에 관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6·12 미·북 정상회담 이후 24일 만에 열린 '2라운드 협상'에서 미·북이 진전된 성과를 내지 못함에 따라 향후 양측 간 비핵화 협상에 험로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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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떠나는 폼페이오 - 1박2일간 평양에 체류하면서 미·북 고위급 회담을 가진 마이크 폼페이오(오른쪽) 미 국무장관이 지난 7일 북한을 떠나기에 앞서 평양국제비행장에서 회담 상대인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맨 왼쪽은 북측 통역. /AP연합뉴스

폼페이오 장관은 7일 평양을 떠나기 전, 동행한 미국 기자들에게 이번 회담 결과를 설명하며 "북한 비핵화 시간표(timeline) 설정 등에 진전을 거뒀다. 협상이 생산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떠난 지 5시간 만에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이 일방적·강도(强盜)적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나왔다. 실로 유감"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협상이)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담보는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측이 약속한 6·25 참전 미군 유해 송환,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실험장 폐쇄 문제도 가시적 성과가 없었다.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은 이와 관련한 후속 실무 협의를 한다는 데만 합의했다. 미군 유해를 넘겨받기 위해 미국 측이 준비한 나무 상자 100여 개는 지난달 24일 북측에 전달된 지 보름째 소식이 없다.

폼페이오 장관은 8일 도쿄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대북 제재는 김정은 위원장이 동의한 대로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가 실현될 때까지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재확인했다"면서도 북한 외무성의 비난 성명에 관해선 "우리 요구가 강도 같으면 전 세계가 강도다. (제재는) 유엔 결의안에 따른 것"이라고 일축했다.
 
미·북 쟁점별 입장

이번 미·북 고위급 회담은 준비 단계부터 미국 내에서 우려가 많았다. 6·12 미·북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당초 기대와 달리 4·27 판문점 회담 때 언급된 '완전한 비핵화'를 더 구체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 조야(朝野)에서는 "양측 간 비핵화 개념 정의부터 합의가 안 된 상태에서 향후 미·북 간 협상이 오랜 기간 공방을 주고받는 '협상을 위한 협상'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후 "북한이 이해하는 완전한 비핵화가 무엇인지 지난 이틀 동안 많이 의논했다"며 근본적 의견 차가 컸음을 시사했다.

美 "비핵화 시간표 우선" vs 北 "제재 완화·종전 선언부터"

미·북은 이번 회담에서도 비핵화 방식에 관해 그간의 각자 주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측은 북한의 선(先)조치와 핵 신고·검증을 전제로 한 '일괄 타결식 비핵화' 시간표를 요구했다. 반면 북한은 7일 밤 외무성 담화에서 "미국 측은 싱가포르 수뇌 상봉과 회담의 정신에 배치되게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요, 신고요, 검증이오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나왔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단계적 동시 행동 원칙이 조선반도 비핵화 실현의 지름길"이라고 했다.

단계적·동시적 조치란 비핵화 단계를 잘게 쪼개어 단계마다 '보상'을 받겠다는 북한의 오랜 전략이다. 이를 다시 내민 것은 미군 유해 송환,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실험장 폐쇄에 상응하는 보상책도 당장 미국이 내놔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실제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미국이 지난달 대북 제재 행정명령 6건의 효력을 1년 연장하기로 한 데 대해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관계 개선을 위한 다방면 교류, 종전 선언 발표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측은 "비핵화 후속 조치가 가시화되기 전에는 종전 선언 등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북은 다만 12일 판문점에서 미군 유해 송환을 위한 실무 접촉을 갖고, 동창리 실험장 폐쇄를 논의할 실무 회담을 갖기로 했다. 또 향후 비핵화 검증 등을 함께 논의할 워킹그룹(협의체) 구성에 합의했다.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양국이 비핵화 검증 등 핵심 사안을 논의할 복수의 워킹그룹을 구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2007년 2·13 합의 때도 6자 회담국이 한반도 비핵화와 미·북 관계 정상화 등을 논의하기 위한 5개 워킹그룹을 구성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복수의 워킹그룹이 가동될 경우, 북한이 각 조치마다 단계적·동시적 보상을 요구하기가 더 쉬워진다.

판은 안 깨졌지만 '기 싸움' 시작… 한·미·일 "최종 비핵화까지 제재"

미·북은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친서를 교환했다. 비핵화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판은 계속 이어 나가겠다는 뜻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이날 도쿄에서 "'완전한 비핵화'가 핵무기부터 핵 물질, 생산 시설 등 모두를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임을 북한이 잘 이해하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두 차례 방북 때와 달리 이번에는 김정은을 만나지 못했다. 이와 관련, "김 위원장을 만나는 것을 꼭 기대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앞서 2일 백악관은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 지도자와 그의 팀을 만날 것"이라고 했었다.

외교 소식통은 "미측이 최근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라는 용어로 압박을 계속하고 대북 제재 완화, 종전 선언도 약속하지 않자 북한이 '기 싸움'을 겸한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영철도 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밝은 미래는 결코 미국이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일 외교장관은 8일 도쿄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최종 비핵화 를 할 때까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제재를 계속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북한이 미국과 계속 기 싸움을 이어 가다간 협상 기회를 아예 잃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협상이 길어질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실익을 못 느껴 어떤 선택을 할지 예단하기 어렵다"며 "북한도 이를 생각하며 전략을 강구할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09/20180709001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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