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오면 놓아주겠다? 첫눈이 올 때국민이 바라는 것은
청와대 2급 행정관의 '사라질 자유'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다
 

선우정 사회부장
선우정 사회부장

날이 갈수록 세(勢)를 불리는 집회가 있다. '여성 차별' 반대 집회다. 두 달 전 1만명이 참여하더니 지난달 집회엔 2만명으로 늘었다. 7일엔 3만명이 참여한다고 한다. 시위대는 거의 여성이었다. 이 집회에서 '유×무죄 무×유죄'란 살벌한 구호를 본 적이 있다. 상스러운 표현이지만 그들이 구호를 통해 말하려는 일그러진 세태, 그 세태의 덕을 보고 사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 분명히 있다. 청와대 2급 선임행정관 탁현민씨가 그중 한 명이다.

내 주제를 모르고 남의 옛 사생활을 탓할 용기는 없다. 탁씨 표현대로 '고등학교 1학년 때 여중생과 성관계를 했든, 단지 섹스 상대이니까 얼굴이 좀 아니어도 신경을 안 썼든, 그 여중생을 친구들과 공유(共有)했든' 모든 건 탁씨의 삶이다. 누구나 인성이 배배 꼬이는 사춘기 시절의 일탈을 구실로 인생 전체에 영구 낙인을 찍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른 중반에 자랑삼아 이런 일을 책으로 써 공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이른바 '공유자'의 죄의식이나 여중생의 인격과 인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작년 그가 청와대에 들어갔을 때 세상이 문제 삼은 것도 그것이다. 하지만 그는 눌러앉았다. 대통령 뜻이었다. 그땐 그래도 약간의 쑥스러움이 청와대에서 엿보였다.

탁씨가 여성이었다면 어땠을까. '여고 1학년 때 단지 섹스를 위해 얼굴이 좀 아닌 남중생과 성관계를 갖고, 친구들과 그 남중생을 공유했다'고 책에 썼다면 그 여성 행정관은 지금껏 청와대에서 버틸 수 있었을까. 대통령은 그녀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었을까. '여자니까 그렇다'는 게 아니다. 남자든 여자든, 측근이든 아니든 서른다섯 나이에 그런 걸 자랑이라고 하는 사람이 권부에 있어선 안 된다. 이건 무슨 엄청난 도덕률이 아니라 염치를 아는 세상의 평범한 규칙이다. 요즘 여성들이 거리에서 외치는 '공정함'도 이 비슷한 것이다.

이 정권은 감성적 언어를 곧잘 사용한다. '사람이 먼저다' '봄이 온다'는 구호는 단순하지만 정권의 정치 철학과 현실 인식을 확실하게 규정하는 힘을 가졌다. 그 힘이 대선과 남북 정상회담 때 큰 효과를 발휘했다. 본질이나 현실과 상관없이 사람으로 하여금 미래를 아름답게, 희망차게 믿게 하는 것이다. 실은 여전히 사람이 먼저가 아니고 한반도에 봄은 오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언어의 마력을 사적 공간에서 이용하고 있다. 탁씨는 사의(辭意)를 밝히면서 "잊힐 영광" "사라질 자유"라고 했다. 청와대는 "첫눈이 오면 놓아주겠다"고 답했다. 이런 같잖은 말을, 그것도 청와대 비서실장 이름으로 청와대 대변인이 국민을 향해 발표했다. 감성 언어로 그가 그만둬야 하는 본질을 가리려 한다. 일상이 고단한 국민은 과거 일을 쉽게 잊을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많은 국민은 여전히 공직자로서 탁씨의 자격과 청와대의 염치 문제를 잊지 않는다. 이런 국민에게 '영광' '자유' '첫눈'을 말했다. 말장난으로 몇 번 성공했다고 세상을 만만히 보는 듯하다. 그 감성적 언어는 탁씨의 이미지와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청와대의 언어 감수성도 이 기회에 재점검해보기를 권한다.

작년엔 그래도 여성가족부 장관의 탁씨 사퇴 요구라도 있었다. 몇몇 여당 여성 의원도 이건 안 된다고 거들었다. 이번엔 다들 조용하다. 반발했다가 정권 지지자에게 역공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다 안다. 탁씨뿐인가. '댓글 조작' 일당과 관련된 사람들이 청와대에서 승진하고 도지사가 됐다. 권력 내 침묵은 권력 내 균형이 무너졌다는 것을 뜻한다. 언젠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청와대에서 보는 지금 세상은 첫눈처럼 가볍고 평화로운 듯하다. 북핵이 해결돼 남북 평화가 실현되고, 소득 주도 성장으로 국민의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주 52시간 노동으로 국민이 취미를 즐기는 모습을 청와대 밖의 현실로 그리는지 모른다. 선거에서 압승하면 신기루가 눈에 어른거린다고 한다. 지금이 그런 모양이다. 사실 이 신기루를 만드는 전문가가 탁씨라고 하니 그를 쉽게 보낼 수도 없다.

'첫눈이 올 때' 국민이 바라는 현실은 북한의 비핵화가 현실이 되는 것이고, 기업의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 가장의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것이며, 노동시간 단축으로 늘어난 시간이 겹벌이의 고통이 아닌 여가의 행복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탁씨의 '잊힐 영광'이나 '사라질 자유'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동북아 운전자'라면 청와대는 그 위상에 걸맞은 비전과 현실을 얘기해야 한다. 위상이 낮아져서 그런지 발신하는 언어도 점점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03/20180703038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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