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김정은, 북한의 태종이 될 것인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6.12 싱가포르 회담’이 열린 지도 보름이 넘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북한과 미국의 후속 협상은 공동성명에 나온 “완전하고 신속하게 실행하기로 약속한다”는 대목에 맞지 않게 부진한 모습이다. 북한의 변화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여전히 엇갈리는 이유다.

우려의 근저(根底)엔 친인척까지 죽인 지도자의 잔혹함, 억류된 미국 대학생을 혼수상태에 이르게 한 뒤에야 석방한 변하지 않은 인권 상황, 경제보상과 핵·미사일 개발의 속내를 감춘 위장된 평화 제스처의 전력(前歷) 등이 복합적으로 깔려있다. 북한이 중국과 이해관계가 맞는 한미 연합훈련 중단, 주한 미군 철수라는 성과만 챙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4·27 판문점 선언’이나 ‘6.12 공동성명’에 담긴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비핵화 모두 북핵 문제 해결에 실패한 과거 남북 합의문의 내용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북한의 진정성에 우려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다.

평화협정이 평화를 보장 못했던 역사 역시 북한의 변화 제스처에 쉽게 ‘환호’해서는 안된다고 웅변한다. 1938년 9월 당시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이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총리, 프랑스의 에두아르 달라디에 총리 등과 평화를 약속한 뮌헨 협정에 서명한 뒤 1년도 안돼 이를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영토 확장에 나선 역사를 들어 북한 평화공세에 감춰진 본질을 봐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체임벌린은 노벨평화상 수상까지 거론됐지만 본질을 보지 못한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작년까지 전쟁 위기설까지 돌던 한반도에 평화의 봄을 싹 틔우기 위한 모멘텀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한다는 기대도 상존한다. 얼마 전 베이징에서 만난 지인은 형제까지 죽일만큼 정적(政敵)에 잔혹한 모습을 보였지만 새 나라의 기틀을 다진 조선의 태종을 들어 김 위원장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태종은 엇갈리는 평가를 받는다. 권력에 눈이 먼 비정한 폭군이라는 폄하도 받지만 과거로부터의 단절에 노력한 지도자라는 평가도 있다. 왕권 세습 체제를 고수했지만 △불교를 억제하는 대신 유교 국가체제를 다지고 △백성과의 소통을 위해 신문고를 설치하고 △대신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지적도 받지만 언론기관인 사간원을 독립시키고 △명나라를 상대로 실리외교를 했다는 것이다.

북한 비핵화의 진정성에 대한 평가는 과거로부터의 단절 의지에서 시작될 수 있다. 체제 보장을 세습체제 보장으로 여기고, 인권 탄압이 여전해서는 북핵이라는 과거 유산의 해체를 기대하기 힘들다.

본질은 국민과 나라의 번영만을 생각하는 지도자의 과거로부터의 단절에 대한 용기가 있느냐다. 북핵, 열악한 인권, 세습체제 모두 진통이 있지만 극복해야 하는 북한의 과거들이다. 북핵 따로, 인권 따로 식으로 북한의 변화를 바라보는 접근이 갖는 한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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