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9월 베이징에서 중국의 6·25 참전을 결정하는 주요 지휘관 회의가 열렸다. 마오쩌둥은 "미국이 싸움을 걸어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자리에는 시진핑 주석의 아버지인 시중쉰도 있었다.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맡을 펑더화이(彭德懷)의 참모 자격이었다. 시 주석이 2010년 6·25를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부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 달 뒤 펑더화이는 참모들을 데리고 압록강을 건넜다. 러시아어 통역은 마오쩌둥 장남인 마오안잉, 한국어 통역은 충북 청원 출신인 조남기가 맡았다. 지난 17일 91세로 별세한 조남기는 열두 살이던 1939년 독립운동가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갔다. 마오안잉은 참전 한 달여 만에 미군 폭격으로 전사했지만 조남기는 1958년 중국군이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군수(軍需) 업무 등을 맡았다. 그는 전쟁 기간 '북한 관리가 되라'는 박헌영의 제의를 거절하고 돌아가 마오의 환대를 받았다. 
 

[만물상] '조선족 우상' 조문한 시진핑
▶조남기는 1987년 중국군 4대 보직인 총후근부장(군수사령관 격)에 임명됐다. 중국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상장(上將·대장 격)까지 진급한 유일한 인물이라고 한다. 1300년 전 고구려 유민으로 서역 원정에 나섰던 당나라 고선지 장군 이후 중국군 최고위직에 오른 한국인이 아닌가 싶다. 1990년대 조남기를 만났던 한 외교관은 "모든 대화를 한국어 통역을 통해서만 하는 데 놀랐다"고 했다. 그만큼 철저하게 중국인으로 살았다. 그러나 2003년 은퇴 뒤에 만났더니 "이제는 조선말로 해도 된다"며 웃더라고 전했다.

▶25일 조남기 영결식에 시 주석을 포함한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전원과 후진타오 전 주석이 참석했다고 중국 선전 기관들이 보도했다. 조남기가 '조선족 우상'이긴 해도 부총리급으로 은퇴했는데 그 영결식에 전·현직 최고 지도부가 총출동한 것은 이례적이다. 마오의 혁명 동지나 상무위원급 정도에나 최고 지도부가 모두 문상한다. 신화통신은 그에게 '영원불멸(永垂不朽)'이란 수식어까지 붙였다.

▶어느 나라든 최고 통치권자의 조문(弔問)에는 정치적 의미가 담긴다. 중국 입장에서 지금은 미국과 소통을 시작한 북한을 붙잡고 한족(漢族) 통치에 반발하는 일부 소수민족을 다독일 필요가 있다. 6·25에 참전했던 조남기 장군의 장례식을 좋은 기회로 봤을 것 같다. 날짜도 하필이면 6월 25일이다. 조문을 통합과 포용의 기회로 활용할 줄 아는 중국 지도부의 지혜가 읽힌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27/20180627039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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