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돈규 주말뉴스부 차장
박돈규 주말뉴스부 차장

사람은 관(棺) 뚜껑을 닫아 봐야 가치를 알 수 있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숨지자 공과(功過)에 대한 평이 쏟아져 나온다. 그는 4·19혁명으로 수립된 민주 정부를 군사 쿠데타로 무너뜨린 사람이다.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맡아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부훈(部訓) 아래 막강한 힘을 휘둘렀다. 인권 후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공헌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대한민국을 산업화 시대로 이끌고 국가의 체계를 다졌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정부는 그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조문을 가지 않았다. 2011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 민주통합당은 조문사절단 파견을 주장했었다. JP는 적국(敵國) 수장만도 못한 대접을 받은 셈이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발끈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가는 마당에도 좋은 말을 못하겠다. 징글징글했다'고 쓴 뒤 방송에도 출연했다. "김종필은 총으로 권력을 찬탈했다. 독재 권력의 2인자로서 호의호식했고 민주주의를 훼손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말라. 이 자랑스러운 민주공화정 대한민국의 시간을 되돌리지 말라."

황씨에게는 그렇게 말할 자유가 있다. 애도할지 말지도 국민 각자의 자유다. 싫어하는 정치인이라고 해서 혐오를 강요할 수는 없다. 정반대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왜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을 좋아하지 않느냐"고 화를 낸다면 그것이야말로 탄압이다.

황씨의 주장이 논쟁적인 까닭은 그가 영향력 있는 폴리테이너(politainer·정치 활동을 하는 연예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본업을 뛰어넘어 문재인을 지지하는 문화·예술계 모임 '더불어포럼' 공동대표를 맡았고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온다. 지난해 초엔 "KBS가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분은 출연이 어렵다고 통보했다"며 블랙리스트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역사는 시대 상황에 비춰 평가해야 한다. 지금 잣대로는 군사 쿠데타와 중앙정보부, 인권 후퇴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당시엔 필요악(必要惡)이 등장할 만한 세상이었기에 역사의 바퀴가 돌아갔다. 교육부는 2020년부터 쓰일 중·고교 교과서에서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가 빠진다고 발표했다. 황씨가 누리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교과서를 적폐로 몰아 비난했던 이 정부가 역사에 대한 평가도 입맛대로 바꿀까 두렵다.

죽음은 공평하다. 정치인도 사망할 때는 개인으로 죽는다. 애도할지 말지, 감 놔라 배 놔라 할 권리는 없다. JP가 생전에 지은 묘비명은 이렇게 끝난다. '되돌아보니 제대로 이룬 것 없음에 절로 한숨짓는다. 숱한 질문에 그저 웃음으로 대답하던 사람, 한평생 반려자인 고마운 아내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26/20180626030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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