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석 파리특파원
손진석 파리특파원

얼마 전 주말을 맞아 차를 몰고 파리 서쪽을 찾았다. 3시간쯤 달려 노르망디의 바이외(Bayeux)란 소도시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큼직한 군인 동상(銅像)을 마주쳤다. 하도 웅장하길래 어떤 프랑스 군인을 기념하는지 확인하려고 차에서 내렸다.

놀랍게도 동상은 프랑스인이 아닌 미국의 2차 대전 영웅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의 형상을 담고 있었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성공시킨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었다.

요즘 노르망디는 1944년과 함께 살아 숨 쉰다. 연합군이 독일군 해안 진지를 기습 공격한 디데이(D-Day·6월 6일)를 전후해 추모객들이 크게 늘었다.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연합군 사상자가 속출했던 해안 포대인 '프앵트 뒤 오크(Pointe du Hoc)'에 갔더니 사방에서 영어(英語)가 들렸다. 미국인·영국인이 많이 몰려 와 있어서였다.

밀러라는 미국 대학생은 "74년 전 이 아름다운 해안 절벽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이 유럽과 미국의 번영을 가져온 것 아니겠냐"고 했다. 해변을 따라 당시 상륙 작전에 참가한 나라들의 국기(國旗)들을 만나고 또 만났다. 온갖 전쟁 기념물마다 생화(生花)가 놓여 있었다.

프랑스가 미국에 부지를 빌려줘 9385명을 안장(安葬)한 노르망디 미군 묘지는 면적이 172에이커(약 21만평)에 달할 정도로 광대했다. 미국 알링턴국립묘지 이상으로 정성껏 가꿔져 있다.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 등 미국의 공화당 대통령은 물론 민주당 대통령들도 이곳을 찾아와 영웅들을 추모했다. 버락 오바마는 취임 첫해 대서양을 건너와 65주년을 기념했고, 5년 후 다시 와서 70주년 기념식도 직접 치렀다.

74년이 흐른 지금 독일은 더 이상 적(敵)이 아니지만 그래도 1944년 6월을 기억하고 추념하려는 행렬은 이어지고, 연합군 전사자(戰死者)들을 귀하게 모시는 프랑스 정부의 태도도 한결같다.

우리는 정작 68년 전 6·25전쟁을 어떻게 대하고 있나. 멀리 갈 것도 없다. 생존자들이 처참한 기억을 토로하는 연평해전이나 천안함 폭침 사건도 제대로 추모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한 해빙 분위기가 시작되면서 '호국 영령'은 발붙이기조차 어색해졌다. 8년 전 천안함 침몰시 북한군 책임자로 정찰총국장을 지낸 사람이 얼마 전 서울에 와서 큰소리치고 돌아갔다.

일부 지식인의 입에선 "천안함 사건으로 북한이 누명을 썼다면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다른 사람이 목숨으로 지켜낸 '자유'를 누리면서 감사는커녕 조롱을 일삼는 사람들도 있다. 노르망디 현장에서 본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6월의 노르망디'는 무엇이 선진국을 만들고, 선진국은 왜 다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24/20180624030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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