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北정상회담 이후]
대북 경제지원 계산서만 받을 판
정계·관료·언론·전문가들 발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한 미군 철수를 언급한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주한 미군이 철수하는 건 한국 군사분계선이 쓰시마해협이 되는 격으로, 일본 안보에 헤아릴 수 없는 위기다."(후카야 다카시 전 국가공안위원장)

"(주한 미군 철수 얘기에) 눈과 귀를 의심했다. 미국 스스로 장기말을 버린 행동이다."(고다 요지 전 자위함대사령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한 미군 철수 가능성을 언급한 뒤 일본 열도가 '안보 패닉'에 빠졌다. 총리관저·외무성·방위성 브리핑 때마다 "주한 미군 철수하면 일본 안보에도 영향 미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쏟아지고, 그때마다 관방장관·외무상·방위상이 "미국이 지금 철수하겠다는 게 아니다"라고 진화하는 상황이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14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이 현시점에서 주한 미군 철수·축소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한·미 동맹에 근거한 억지력이 동북아 안전 보장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고 했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은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해 온 '공공재'"라고 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방위상은 이날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과 전화 회담을 하고 주한 미군의 현재 규모를 유지하도록 요청했고, 이에 매티스 장관은 "주한 미군 축소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고 일본 NHK가 보도했다.

정계와 언론, 관료와 안보 전문가 사이에서도 "한·미 훈련 중단이나 주한 미군 철수는 안 될 말" "중국·북한만 싱글벙글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북 회담 합의에 비핵화 과정이 북한의 페이스에 말릴 수 있는 3개의 덫이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 덫은 미·북이 비핵화를 단계별로 진행하겠다고 한 점이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하나 취할 때마다, 한·미·일은 매번 '값'을 지불해야 하는 반면 북한은 시간도 벌고 돈도 챙길 거란 얘기다. 둘째 덫은 김정은이 미국 본토에 닿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뿐, 한·일을 겨냥한 단·중거리 미사일 1000개에 대해선 한마디도 안 한 것이다. 셋째 덫은 미국이 자국 이익만 챙긴 채 주한 미군을 축소하거나 철수시키면, 동북아 세력 균형이 급격히 중국 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안보 패닉' 뒤에는 "트럼프를 너무 믿었다"는 자책도 있다. 일본 정부는 이번 미·북 회담에 맞춰 '아베 총리의 외교 브레인'인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보국장을 싱가포르에 보냈다. 아사히신문은 "야치 국장이 미국 실무팀과 접촉해 '주한 미군 얘기는 안 나올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일본 정부가 안심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일본도 몰랐다는 얘기다.

그동안 아베 총리는 국민 앞에서 "나와 트럼프는 '도널드'와 '신조'라고 퍼스트네임 부르는 관계" "언제든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는 사이"라고 수없이 강조했다. 하지만 막상 미·북 회담이 닥치자, 트럼프는 11월 미국 중간선거에 대비해 ICBM 실험을 중단시키는 데 집중한 뒤, "(비핵화 대가인) 대북 경제 지원은 한·일이 할 것"이라고 계산서만 떠넘겼다.

이번 회담 때문에 중국만 더 강해질 거란 분석도 나온다. 미국 군사력 평가기관 글로벌파이어파워(GFP)가 매긴 2018년 세계 군사력 랭킹에서 일본(8위)은 중국(3위)에 비해 인구는 10분의 1, 병력은 9분의 1, 방위 예산은 3분의 1에 불과하 다. 경제도 이미 중국에 추월당했다. 와타나베 야스시(渡辺靖) 게이오대 교수는 "당장은 북한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일본에 문제의 핵심은 중국의 존재"라면서 "대만과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행보를 생각하면, (이번 미·북 회담으로 인해) 일본이 중국에 맞서는 최전방 국가가 되거나 미·일 동맹에서 더 큰 부담을 강요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15/20180615002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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