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美北정상회담]
北매체 '先보상 後비핵화' 주장해 美의 '先비핵화 後보상'과 정반대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 매체들은 1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미국 측이 조(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한 신뢰 구축 조치를 취해나간다면 우리도 그에 상응하게 계속 다음 단계의 추가적인 선의의 조치들을 취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미·북 정상회담 후 의기양양해진 김정은이 미국이 먼저 성의를 보여야 비핵화를 하겠다는 '선(先) 보상, 후(後) 비핵화' 원칙을 밝힌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비핵화 해법으로 당연시돼 온 '선 비핵화, 후 보상' 원칙과는 정반대다.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는 "지금까진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면 미국이 안전보장이나 평화체제 구축 등을 해준다는 구도였는데 그 순서가 뒤바뀐 것 같다"고 했다.
◇김정은 "보상 먼저 해야 단계적 비핵화"
원래 이번 정상회담을 준비하며 미국이 내세운 북한 비핵화 원칙은 '리비아 모델'로 불리는 '일괄타결식의 선 비핵화, 후 보상'이었다. 북핵 완전 폐기 시한을 '6개월~1년'으로 못 박고, 북한 핵·미사일 완전 포기와 국교 정상화 등 보상을 묶어 속전속결로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이뤄낸다는 것이었다. 북한이 원하는 '단계적, 동시행동' 방식 탓에 지난 25년간 북핵 협상이 수렁에 빠졌다는 교훈이 반영됐다.
하지만 북한은 '리비아 방식'에 거세게 반발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백악관에서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을 만난 뒤 기자들에게 "(북한에) 천천히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리비아 모델'을 폐기하고 이른바 '트럼프 모델'로 갈아탄 것이다. 구체 사항은 공개된 적이 없지만 '비핵화를 2~3단계로 나누되 시한을 2년 이내로 못 박고 북한에 대한 보상도 2~3개 덩어리로 나눠 제공한다'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단계적 해법을 일부 수용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선 비핵화, 후 보상 원칙'은 지켜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와 보상의 순서까지 뒤집은 것이다. 노동신문은 이 소식을 전하며 "조·미 수뇌분들께서는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이룩해나가는 과정에서 단계별, 동시 행동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대하여 인식을 같이하셨다"고 했다. 이른바 '단계적 선 보상, 후 비핵화' 원칙에 미·북 정상이 공감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중·러 대리인 역할 완수한 김정은
북핵 협상에 관여했던 전직 고위 외교관은 "비핵화는 일괄타결이 안 되면 무조건 사찰·검증 단계에서 지루한 게임을 벌여야 한다"며 "도처에 숨어 있는 '디테일의 악마'들로 인해 언제든 판이 깨질 위험이 있다"고 했다.
외교가에선 이번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 "중국·러시아가 김정은이란 대리인을 통해 자신들의 숙원사업 실현에 바짝 다가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한 ·미 연합훈련 중단과 주한미군의 감축·철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중·러가 강력 주장해온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 군사훈련 동시 중단)의 실현 가능성이 매우 커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한·미 연합훈련과 주한미군은 북한뿐 아니라 중·러에도 상당한 안보 부담"이라며 "중·러는 지금 표정 관리 중일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14/20180614003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