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美北정상회담]
김정은과 같은 호텔 묵고있는 김경필 특파원, 세인트레지스 내부에서 본 현장
 

김경필 특파원
김경필 특파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일행이 묵고 있는 싱가포르 세인트레지스호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북한 남녀 3명이 보였다. 검정 치마와 재킷, 보라색 손가방 차림의 30대 여성 뒤로 키 180㎝가 넘는 건장한 남성 2명이 서 있었다. 여성은 사진이 붙은 신분증을 목에 걸었고, 3명 모두 왼쪽 가슴에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달았다.

기자가 "내려가나요"라고 묻자 여성이 유창한 영어로 "몇 층에 가느냐"고 물었다. 기자가 "1층입니다"라고 하자 여성은 "1층은 이미 눌러져 있다"고 답했다. 5층에서 탄 유럽계 노부부가 북한 대표단임을 알아보고 "여러분 여행의 성공을 기원한다"고 말하자 여성은 활짝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지난 9일부터 사흘째 세인트레지스호텔에 묵고 있는 본지 기자 4명이 목격한 북한 측 수행단과 '외부인'의 유일한 대화였다.

본지는 김정은이 세인트레지스호텔에 묵으려는 움직임을 포착, 현지 취재팀 숙소로 잡았다. 한국 신문 중에선 사실상 유일하게 현장을 취재할 수 있었다. 김정은을 수행하는 북한 측 인사들은 지난 사흘간 호텔 로비와 식당,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과 수시로 마주쳤다. 호텔 곳곳을 돌아다니며 웃고 잡담을 나눴다. 긴장하거나 낯설어하는 모습은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들은 싱가포르 정부 관계자와 호텔 직원들을 제외한 누구하고도 말을 나누려 하지 않았다.

김정은 투숙 호텔 지키는 경호원들 - 11일 오후(현지 시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숙소인 세인트레지스 호텔에서 북한 경호원들(양복 입은 사람들)이 1층에 도착한 승강기에서 내리고 있다. 김정은은 이 호텔 20층 VIP룸에 묵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투숙 호텔 지키는 경호원들 - 11일 오후(현지 시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숙소인 세인트레지스 호텔에서 북한 경호원들(양복 입은 사람들)이 1층에 도착한 승강기에서 내리고 있다. 김정은은 이 호텔 20층 VIP룸에 묵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필 특파원

북 경호원들은 10일 밤 호텔을 순찰하다가 "시간이 참 안 간다"고 말했다. 그러다 한 투숙객이 말을 걸자 손사래를 치며 피했다. 잡담하던 중년의 북한 외교관들도 주변에서 한국말이 들리면 곧바로 입을 닫았다.

김정은은 호텔에 투숙한 이후 단 한 차례도 호텔 내 식당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북한에서 공수해온 식자재로 음식을 자체 조리해 먹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북한 수행단도 식사하러 호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리용호 외무상 같은 고위 간부나 말단 경호원 모두 호텔 1층의 조식 뷔페식당과 2층의 '옌팅(宴庭)'이란 중식당만 이용했다.

호텔에서 식사중인 김영철·김성혜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숙소인 세인트레지스 호텔 내 식당에서 김영철·김성혜(점선)가 다른 인사와 식사를 하고 있다.
호텔에서 식사중인 김영철·김성혜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숙소인 세인트레지스 호텔 내 식당에서 김영철·김성혜(점선)가 다른 인사와 식사를 하고 있다. /독자 제공

북한 관계자들은 김정은의 신변 안전과 북한 고위 인사들이 외부 카메라에 찍히지 않게 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지난 10일 오후 3시 40분쯤 김정은이 호텔에 도착한 뒤로 북측은 정문 보안 검색대에 경호원 1~3명, 1층 엘리베이터에 1~2명을 24시간 배치했다. 요주의 인물을 가려내고 외부인들이 17층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김정은이 호텔에 들어오거나 나설 때마다 40명 넘는 경호원이 김정은 주위를 몸으로 감쌌다. 싱가포르 경찰이 그 바깥에 둘러섰다.

북측은 북한 매체 기자 외에는 누구에게도 김정은과 대표단 모습이 찍히지 않게 하려 했다. 호텔 직원들과 싱가포르 정부 관계자들은 로비에 있던 모든 이에게 "절대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줬다. 서너 번씩 같은 이야기를 들은 투숙객들은 "무슨 말인지 알았으니까 그만하라"고 짜증을 냈다.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보내던 한 일본인 기자는 로비에서 쫓겨났다. 김정은이 호텔에 도착하기 2시간 전이었던 10일 오후 1시 30분쯤 객실에 올라가려던 본지 사진기자는 사진기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정문에서 제지당했다. 한 시간 승강이 끝에 호텔로 들어온 기자는 객실로 쫓겨 올라가 한 시간 넘게 갇혀 있어야 했다.

북측의 경호는 11일부터 다소 느슨해졌다. 북한 고위 관계자들이 미국과 실무 협상하려고 호텔을 드나들 때 기자들의 접근이 허용됐다. 이들 모습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몰래 찍었지만 호텔 직원들도 강하게 제지하지 않았다. 호텔 안팎에선 김정은이 "우리도 손님이니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 가는 일은 하지 말라"고 말해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12/2018061200288.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