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외교전략통' 이수혁 의원]
"협상 거래는 선한 사람끼리 하는 게 아니다… 국제정치란 뒷마당에서는 몰래 武器를 만드는 것
문 대통령 100% 의심 없이 김정은의 진정성 믿을까… 협상 위해 믿는 것처럼 할 뿐, 아니면 나이브한 것…"
 

'여권의 외교전략통'인 이수혁(69)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방선거 지원을 위해 전북 정읍에 머물고 있었다. 용산역에서 KTX로 1시간 반 거리였다. 그는 미·북 회담을 앞두고 정파와 이념은 잠시 잊어버린 듯했다.
 
이수혁 의원은“김정은이 회담의 최고 수혜자, 엄청난 외교적 자산을 거뒀고 국제적 인물이 됐다”고 말했다.
이수혁 의원은“김정은이 회담의 최고 수혜자, 엄청난 외교적 자산을 거뒀고 국제적 인물이 됐다”고 말했다. /정읍=최보식 기자

"개인적으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는 믿지 않는다. 비유하면 상습 도박꾼이 '이제 화투패를 안 쥐기 위해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말한다고 해서 믿을 수 있나. 북한은 수없이 말을 뒤집어 온 전력(前歷)이 있다. 8년 전 내가 쓴 책에서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북한은 붕괴하지 않는다. 중국은 북한을 버리지 않는다'는 세 가지 전제를 내놓았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6자 회담 수석대표를 맡아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라는 약어(略語)를 처음 썼던 인물이다. 그 뒤 독일 대사와 국정원 1차장을 지냈고, 지난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외교·안보 멘토 역할을 했다.

"협상은 항상 상대가 속일 것이라는 의심을 갖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부부 관계에서도 속이는데, 국가 간 관계는 이보다 더하다. 외교는 기본적으로 국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투키디데스('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역사가)는 '국제 정치란 뒷마당에서는 몰래 무기(武器)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말로 하는 약속이나 선언에는 꼭 검증이 필요하다."

―트럼프는 중간에 회담장을 걸어나올 수도 있다고 했지만,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그는 회담이 '성공'으로 포장되길 원할 것이다. 공동 선언은 '비핵화 합의'로 하고 구체적인 실행 부문에서는 양보할 가능성이 높은데?

"결렬되기에는 단시간에 너무 멀리 가버렸다. 김정은은 '괌을 폭격하겠다'는 몇 달 전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버렸다. 미국의 신뢰를 받기 위해 과도한 액션을 보였다. 보폭이 넓고 속도가 너무 빨랐다. 트럼프만 그런 게 아니라 북한도 이번 회담이 성공으로 포장되길 원한다. 만약 회담이 엎어지면 김정은 정권이 무너진다. 지금까지는 김정은이 회담의 최고 수혜자다. 이미 엄청난 외교적 자산을 거뒀고 국제적인 인물이 됐다."

―국내 보수 진영에서는 '과거 행정부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트럼프에게 비핵화의 기대를 걸었지만, 이제 그를 장사꾼처럼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트럼프의 비핵화 의지는 강하다고 본다. 그도 칼날 위에 서 있을 거다. 다만 그의 스타일 때문에 회담 결과가 좋아도 '적당히 타협해놓고 크게 성공한 것처럼 선전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을지 모른다."

―실무자들이 다 해놓고 무대에서 세리머니를 하는 게 정상회담이다. 이번에는 실무 협상에서 완전하게 합의되지 못한 채 열리는 셈인데.

"지금은 반대로 가고 있다. 큰 틀에서 정치적 합의를 먼저 보고 나중에 세부적인 것을 맞춰 가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합의될 것으로 보나?

"트럼프가 포장을 잘할 것이다. 예단하기 어렵지만,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탄두 몇 개를 상징적으로 해체·반출하는 것으로 이벤트를 만들지 않을까 싶다. 이런 정치 합의는 쉽다. 진짜 게임은 정상회담이 끝나면서 시작된다. 핵 물질의 과거 이력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검증·이행 단계에서 지루한 게임이 계속되고 자칫 깨질 수도 있다. 과거의 역사적인 회담을 보면 당시에는 성공한 듯 포장되고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도 받았지만 나중에는 실패한 회담으로 기록되고, 당시에는 회담이 결렬됐지만 나중에는 개선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

―트럼프는 "단기간에 일괄타결(All-in-One)"을 내세웠다가 "비핵화를 천천히 할 수도 있다"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후퇴했다. 세월을 끌다가 북한은 제재가 풀리고 경제적 지원까지 받은 뒤 결국 원상으로 돌아가는 과거의 실패 사례가 재연되지 않겠나?

"비핵화에는 거쳐야 할 단계와 절차가 있다. 이런 물리적 이유 때문에 단계적 접근, 스텝 바이 스텝(step by step) 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비핵화를 시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것 같다. 가령 북한이 핵탄두·핵 물질·핵 시설 등에 대한 신고서를 제출하면 현장 사찰을 해야 한다. 핵 물질이 언제 얼마나 어떻게 사용됐는지 과거 이력을 조사하고 총량과 맞춰 봐야 하고 폐기 대상을 설정하는 등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플루토늄은 그나마 검증이 가능하지만 문제는 농축우라늄이다. 이는 속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 같은 국면에서도 북한이 '속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북한의 진정성 여부와 상관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설령 진실하게 신고해도, IAEA(국제원자력기구)나 미국은 '농축우라늄 시설이 더 있을 수 있다'고 의심할 것이다. 이는 게임이고 외교이고 국제정치다. 특히 안보에 관해서는 북한만 아니라 어느 나라도 속인다. 국익 차원이지 정의의 문제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솔직하고 예의 바르다"며 김정은의 핵 포기 진정성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사람 좋은 이미지 때문에 그렇게 보이지, 문 대통령도 100% 의심 없이 김정은의 진정성을 믿을까. 협상을 위해 믿는 것처럼 할 뿐이지, 안 그렇다면 나이브한 것 아닌가. 협상은 물론 북한이 진정성 있게 할 것이라는 전제에서 한다. 그러나 반드시 검증은 해야 한다. 협상 거래는 선한 사람끼리 하는 게 아니다. 거꾸로 북한도 미국을 믿지 못할 것이다. 미국이 북핵 사찰을 악용할 소지도 있다."

―미국이 핵 사찰을 악용한다는 뜻은?

"부시 정부 시절 미국은 '중요 자료가 은닉돼 있다'며 이라크의 농림부까지 특별 사찰했다. 물론 아무것도 없었다. 미국의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었는지 모른다. 과거에 IAEA 특별사찰단은 핵 은닉처로 북한의 군사시설과 주석궁도 사찰하겠다고 했다. 북한이 '주권 침해'라며 맞섰고 그 뒤 NPT를 탈퇴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그런 사찰은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아마 사찰 검증 단계에서 또다시 한반도 위기론이 나올 수도 있다."
 
싱가포르에 등장한 트럼프·김정은 대역 배우.
싱가포르에 등장한 트럼프·김정은 대역 배우. /로이터 연합뉴스

―화기애애한 '판문점 회담'을 생중계로 본 우리 국민은 북핵은 해결됐고 이미 평화가 온 것처럼 여겼다. 속고 속이는 냉정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한 정권을 감성적으로 바라보게 된 데는 현 정부가 그런 분위기를 조성한 측면이 크다.

"문 대통령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것은 옳았다. 하지만 악마(惡魔)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핵 문제는 고도의 정치 영역이다. 해결하려면 많은 시간과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서로 간에 조건이 맞아야 한다."

―가령 핵탄두 한 개당 보상가를 얼마나 책정하느냐 같은…?

"그렇다. 핵무기·핵 시설 폐기에 따른 보상 비용을 하나하나 모두 협상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처음에는 '단기간에 완전한 비핵화' '일괄 타결'이라는 미국의 입장에 섰지만, 현실에서 그렇게 될 수 없으니 시간이 가면서 어정쩡해졌다. 지금은 미·북 간에 해결할 문제라며 입을 다물게 됐다."

―우리 국민은 비핵화 의지를 표명한 김정은이 자발적으로 다 내놓을 것으로 봤다. 떠들썩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속담이 들어맞는다.

"김정은이 이 정도 나왔으면, 꼭 그렇게 결과를 비관할 것은 아니다. 사실 김정은도 불안할 것이다. 핵 포기에 대해 당과 군부 안에서 이견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신정(神政) 체제라 해도 이를 무시 못 한다.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보낸 친서에는 '어려운 국면이지만 나는 비핵화를 하겠으니 힘을 실어 달라'는 내용이 담겼을지 모른다."

―트럼프는 그 친서에 대해 "따뜻하고 좋았다.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금 상황만 보면 문 대통령보다 김정은과 더 가까워질 것 같다. 반면에 트럼프는 문 대통령 면전에서 '그 부분은 통역 안 해도 된다'는 등 외교적 결례를 범했고, 미·북 회담 취소도 일방적으로 발표해버렸다.

"트럼프 스타일이 원래 그러니까. 문 대통령에게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는 비즈니스를 했기 때문에 표리부동하고 마음에 없는 말도 한다. 솔직히 정말 마음에 안 든다."

―문 대통령에 대해 불신까지는 아니어도 존중하는 것 같지는 않다.

"트럼프의 마음에 쏙 드는 것은 아닐 수 있다. 문 대통령에 대해 북한과 친하고 동맹(同盟)보다 민족주의 요소가 강한 좌파 성향으로 보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은 비핵화보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중점을 두는 것 같다. 한국의 대통령이라면 국민의 실존을 위협하는 핵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해 달라고 미국에 오히려 요구해야 하지 않는가?

"문 대통령의 비핵화 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안다. 다만 핵 문제에서는 우리가 '운전석'에 앉을 수 없다. 우리에게는 발언권이 없다. 우리는 북핵 위협의 피해 당사자는 맞지만, 핵 비확산 문제의 당사자는 아니다."

―트럼프와의 불편한 관계로 청와대 참모들은 반미(反美) 성향으로 더 기울 것 같아 걱정이다. 이런 기류는 국익을 해칠 수가 있는데?

"한·미 동맹은 군사 안보만이 아니라 경제와도 관련이 있다. 나라 전체를 생각하면 반미로 갈 수는 없다."

―이번 회담에서 크게 성과가 있으면, 미·북 수교의 가능성도 있다고 보나?

"과거 6자 회담 때 북한의 김계관이 '우리가 핵을 포기한다고 해도 미국이 수교를 안 해준 다. 왜 그러느냐?' 하고 내게 물어왔다. 내가 제임스 켈리 대표에게 전하니, 그는 '미국은 양자 관계의 관심 사항이 해결된 상황에서 수교할 수 있다. 그중에 인권 문제가 포함돼 있다'고 알려줬다. 내가 '인권은 북한 체제와 관계된 것이다. 인권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핵이 해결 안 돼도 된다는 거냐?'고 물으니, '상원(上院)에서 안 받아준다'고 답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10/2018061002196.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