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트럼프·김정은 회담과 최고 시청률

6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싱가포르 시각으로 오전 9시에 열린다. 워싱턴 DC와 뉴욕이 있는 미 동부 시각으로는 11일 오후 9시, 캘리포니아주가 있는 미 서부 시각으로는 오후 6시다. 미국 방송국들은 이 시간대를 시청률이 가장 잘 나오는 ‘프라임 타임(황금 시간대)’으로 꼽는다.

이번 미·북 정상 간 만남은 미국 현직 대통령과 북한 최고 지도자의 첫 정상회담이다. 회담 시간이 이렇게 정해진 것은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철저한 계산에 따른 것이다. 그는 사업가 시절 TV 리얼리티 쇼를 할 때부터 시청률에 집착했다. 그는 지난달 한국계 미국인 3명이 북한에서 석방돼 미국에 돌아갈 때 한밤중에 공군기지 활주로에서 이들을 직접 맞았다. 마중 전엔 방송 예고편을 내보내 듯 “굉장한 장면이 펼쳐질 것”이라고 했고 생중계를 위해 활주로에 모인 수백 명의 취재진에겐 “새벽 3시 시청률로는 역대 최고일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스타일로 해석하면 김정은과 그가 만나는 모습은 최고의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TV 쇼나 마찬가지다. 미국 국민에게 ‘과거 미국 대통령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내가 해냈다’라는 강력한 인상을 줄 수 있다. 정치 지지율을 높여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유리하게 끌어갈 수도 있다.

회담날이 가까워질수록 북한 비핵화라는 미·북 정상회담의 목적이자 목표가 약해진 듯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미·북 정상회담을 취소하고 최근 다시 하겠다고 밝힌 후 내놓은 발언들은 과연 이번 회담에서 북핵 폐기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백악관에서 김정은 친서를 들고 온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만난 후 비핵화와 관련해 “시간을 갖고 천천히 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짧은 시간 내 북핵을 완전 폐기시키겠다’고 공언한 기존 입장을 완전히 뒤집는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최대 압박이란 용어를 더는 사용하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대북 최대 압박 정책이 김정은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냈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북한과 잘 지내고 있기 때문에 최대 압박이란 말 자체를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새 제재를 부과할 계획도 이미 접었다고 밝혔다. 현 제재는 유지된다고 해도 비핵화 일괄 타결 원칙이 후퇴한 상황에서 대북 제재망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민주당 상원 지도부는 최근 대통령에게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 폐기·검증 전에 대북 제재를 해제하면 안 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회담장으로 확실히 불러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일부러 비위를 맞춰주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도 본다. 그렇더라도 어디까지가 그의 ‘협상의 기술’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번 회담이 어떻게 흘러갈지 우려가 만만찮다. 한국은 북핵 문제의 당사자지만 미·북 핵협상의 당사자는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TV 쇼로 끝나지 않길 바랄 수밖에 없다.


원문보기: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07/2018060700498.html#csidx86d794c16e2a8df8c1816605de87ebb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