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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 평화는 공짜 선물이 아니다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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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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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북 정상회담 끝나면 전쟁 물 건너갈까
소수만 得 보는 '통일'보다 '전쟁' 더 낫다는 역설도
 

권지예 소설가
권지예 소설가

6월은 호국보훈의 달. 올해 6월에도 어김없이 63주년 현충일이 돌아왔고, 곧 6·25가 돌아온다. 그러나 세계의 이목과 관심은, 새로운 역사를 쓰는 세기의 담판이 될 '6·12 미·북 정상회담'에 쏠려 있다. 얼마 전까지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怨讐)였던 미국과 북한의 두 원수(元首)가 제3국 싱가포르에서 손을 잡고 평화로 가는 문을 열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도 북한의 핵실험으로 전쟁 공포에 떨던 우리는 이제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전쟁'보다는 '평화'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국이 북한의 체제 유지를 보장하는 반대급부로 비핵화를 조건으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통일은 어찌 되려는가. 앞으로는 전쟁은 물 건너가고, 통일보다는 평화가 화두가 되는 시대가 오려나.

통일을 상상해서 쓴 소설로는 2009년에 출간한 이응준의 '국가의 사생활'이 있다. 북한이 대한민국에 완전히 흡수 통일된 이후 최악의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있다. 이에 영향을 받았다는 장강명은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란 소설을 2016년 11월에 출간했다(주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님). 제목만큼 소설이 도발적이다. 이 소설은 '국가의 사생활'과는 설정이 다르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우리의 소원은 전쟁'의 배경이 되는 설정에 대해 자문한 결과, '통일 전문가들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평가했던 시나리오'라고 프롤로그에 썼다"고 밝히고 있다.

"술과 이념은 처음에는 사람을 취하게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한다"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김씨 왕조(王朝)가 맥없이 무너진 이후 과도기를 다룬 이야기다. 북한은 통일 과도정부를 세우고 대량 살상 무기를 즉각 포기하며 핵과 관련해 모든 국제기구의 사찰을 받아들이겠다고 공표했다. 북한에는 남한군(軍)이 포함된 다국적 군대인 유엔평화유지군이 파견되었고, 남한 정부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지만, 갑작스러운 통일은 모두에게 재앙'이라고 남북한 국민을 설득했다. 아직 분계선은 그대로지만, 북한은 마약을 밀매하고 치안이 유지되지 않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무정부 사회가 되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그런데 작가는 왜 제목을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라고 붙였을까. 평화유지군인 두 주인공의 대화를 보면 정치적 명분과 기득권층만의 이익이 되는 통일을 하느니 차라리 전쟁이 낫다는 역설(逆說)인 걸까.

강민준-"아, 개소리하지 말라고 하십쇼. 요즘 남한 젊은이들은 '이러느니 차라리 북한과 전쟁을 벌였어야 했다'는 이야기들을 공공연히 합니다. 전쟁을 했더라면 섬멸전이 벌어졌을 거 아닙니까. 그렇게 북한을 완전히 불 지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나았을 것 같지 않습니까? 통일 과도정부 같은 괴상한 정부도 없고, 부패한 관료도 없고, 마약 조직도 다 소탕할 수 있었을 거예요."

미셀 롱-"남한의 통일론자들이 통일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신문에서 몇 번 봤어요. 저로서는 납득할 수가 없더군요. 특히 남한과 북한이 합쳐지면 내수시장이 커지고 북한의 싼 임금 덕분에 남한 기업들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얘기. 그건 남한 자본이 북한 사람들을 노동자로 소비자로도 이용해 먹겠다는 얘기죠.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게 의미가 없는 거예요."

150년 전에 나온 톨스토이의 대하소설 '전쟁과 평화'는 작가가 신(神)과 같은 전지적 시점(全知的 視點)으로 평화로운 일상의 세계와 전쟁의 세계에서 등장인물 599명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 무엇이 역사를 움직이는가를 고찰한다.

'능금이 익으면 저절로 떨어지듯이' 전쟁은 어쩔 수 없는 수없이 많은 아주 작은 우연이, 필연들의 유기적 집합체가 되어 영웅들의 행위도 역사의 모든 진행과 연관된다. 그것은 태고(太古) 적부터 결정되어 있었다고 전쟁관과 역사관을 피력한다.

6월 12일, 역사의 물길이 달라진 다. 이 역사적 변혁기에 현충원이나 이름 모를 산하의 땅속에 누운 순국선열이나 전몰장병의 영령(英靈)들은 어떤 생각을 하실까. 70년. 어쩌면 능금이 익어간 시간.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그분들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어떻게 우리가 능금의 단맛을 볼 수 있을까. 평화는 공짜 선물이 아니다. 산 자나 죽은 자, 모두의 염원으로 가꾸는 한 그루 사과나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06/20180606025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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