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北정상회담 D-8]

北 김영철 만난 뒤 달라져… '6·12 원샷 담판' 아닌 상견례 시사
"비핵화 천천히 갈 수도… 추가 제재 안 하겠다" 사실상 속도조절
NYT "북한식 단계적 해법 수용 가능성… 과거 실수 반복하나"
 

북한에 대한 완전한 비핵화를 '일괄 타결'하겠다고 공언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일(현지 시각)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을 만난 뒤 "천천히 갈 수도 있다"며 말이 바뀌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2일 "(단계적 비핵화를 추진했던) 과거 정부의 실수를 반복하는 위험을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

◇비핵화 시점:"단시간 내 일괄타결"→"천천히"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김영철을 백악관에서 80여분간 만난 후 기자들에게 "오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한 김정은과 만날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24일 자신이 공개편지를 통해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한 뒤 8일 만에 정상회담 재개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그것(정상회담)은 하나의 과정이 될 것이고, 나는 그것이 한 번의 회담으로 진행된다고 결코 말하지 않았다"며 "나는 12일에 무언가에 사인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비핵화 담판이 아니라 마치 미·북 정상의 '상견례'와 같은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친서 받은 트럼프 - 도널트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 시각)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가져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친서 내용에 대한 관심과는 별개로 친서 봉투의 크기를 두고 소셜미디어에서 갖가지 해석이 나왔다.
김정은 친서 받은 트럼프 - 도널트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 시각)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가져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친서 내용에 대한 관심과는 별개로 친서 봉투의 크기를 두고 소셜미디어에서 갖가지 해석이 나왔다. /백악관 소셜미디어국장 트위터

그는 특히 '두 번째, 세 번째 만남이 있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앉아서 (협상한 지) 두세 시간 만에 모든 것이 해결되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며 "솔직히 나는 오늘 그들(북한)에게 천천히 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빨리 갈 수도 있고, 천천히 갈 수도 있다"고 했다. 이는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속도를 늦추겠다는 뜻이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 번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란 기존의 협상 원칙을 거론하지 않았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인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가 북한의 기존 핵 능력에 대한 '장기적 동결'에 문을 열어놓았고, 기본적으로 과거 미국 행정부가 했던 북핵 협상과 같은 맥락이란 것이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이 신문에 "문제는 트럼프가 그가 하고 있는 일(비핵화 협상)이 우주 탄생처럼 완전히 새로운 역사적인 일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고 있느냐이다"라고 했다. 트럼프 본인은 완전히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과거에 실패했던 길이란 뜻이다.

◇최대 압박:"유지"→"더는 그 용어 사용하고 싶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제재와 관련해서도 발언이 확 바뀌었다. 그는 지난 3월 말 북한 김정은이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을 때만 해도 자신의 트위터에 "유감스럽게도 최대한 제재와 압박은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유지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날 "나는 최대 압박이란 용어를 더는 사용하고 싶지 않다"며 "우리(미·북)는 함께하고 있고, (좋은) 관계를 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신규 제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기존 제재는 유지한다고 했지만, 대북 제재의 의지는 확연히 떨어진 것이다.

◇종전 선언:"비핵화 전엔 없다"→"논의 있을 것"

그는 또 지금껏 수차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전엔 양보는 없다"고 해왔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오는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종전 선언과 관련해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일이다. 논의가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북한 비핵화 전이라도 '종전 선언'이란 선물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종전 선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고 알려진 것을 감안하면 분위기가 크게 바뀐 것이다.

그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이날 "김영철과 만남에서 다루지 않았다"며 추후 정상회담에서 "다룰 수도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연두교서 당시만 해도 "북한 핵 위협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선 타락한 북한 정권을 살펴야 한다"며 북한 인권과 핵 위협이 연결돼 있다고 했었다. 인명을 경시하는 북한의 잔혹한 인권 탄압이 핵 개발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감축:"회담 의제 아니다"→즉답 않고 "거의 모든 것 얘기"

그는 또 이날 '주한미군의 수준과 관련된 논의를 했느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하며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얘기했고, 많은 대화를 했다. 제재도 얘기했다"고 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의 거듭된 부인에도 향후 비핵화 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04/20180604002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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