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 '격동의 시간']
조명록, 클린턴 임기말에 만나 정권 바뀌며 美北정상회담 무산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1일 워싱턴으로 이동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는 것은 미·북 간 협의에서 진전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김영철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뉴욕 회담을 통해, 판문점(의제)과 싱가포르(경호·의전) 실무 협상에서 풀지 못한 문제들을 상당 부분 해소한 것으로 31일 전해졌다.

김영철, 바로 백악관 갈 듯

워싱턴에 도착한 김영철은 따로 국무부에 들르지 않고 백악관으로 직행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親書)를 전달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 친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4일(현지 시각) 미·북 정상회담 취소 선언을 하며 보냈던 공개 서한에 대한 답장 성격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당신이 중요한 정상회담과 관련해 마음을 바꾼다면 주저하지 말고 나에게 전화나 편지를 달라"고 했었다. 김정은은 친서에 우선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우호적 메시지를 담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지난 25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를 통해 김정은도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면 좋은 시작을 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김정은의 친서에는 미·북 간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싶다는 내용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완전한 비핵화' 의지가 담겼을지가 주목된다. 외교 소식통은 "최고 지도자의 친서인 만큼 양국 관계 개선을 큰 틀에서 언급할 것 같다"고 말했다.

18년 전보다 복잡한 상황

김영철의 이번 방미는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초반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2000년 조명록 차수의 방북 때와 비교할 때 의미가 다르다. 2000년 10월 조명록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워싱턴을 방문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만났지만, 당시는 클린턴의 임기가 석 달밖에 남아있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조명록은 "클린턴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한다"는 김정일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공화당으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미·북 정상회담은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반면 이번에는 미·북 간에 어떤 합의가 도출되더라도 이행할 시간이 충분하다.

다만 이번에도 결과가 유동적인 측면은 있다. 2000년 당시 미·북 관계의 쟁점은 미사일 문제와 테러지원국 해제였다.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제네바 합의가 아직 유효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이 고도화된 지금은 문제가 더 복잡하다. 비핵화와 체제 보장이란 쟁점을 놓고 협상이 틀어질 가능성이 곳곳에 매복해 있다. 실제 김영철의 방미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을 취소했다가 다시 복원하는 과정에서 급하게 성사됐다.

이 때문에 북한 매체들은 29일 북한을 떠난 김영철의 미국 방문 사실을 31일 밤까지 보도 하지 않았다. 조명록 방미 때는 미국 방문 8일 전부터 예고 보도를 내보냈었다. 또 당시 북한 매체들은 조명록의 워싱턴 도착, 클린턴 대통령 면담, 귀국 등 모든 일정을 비교적 신속하게 보도했었다. 충분히 조율됐던 조명록의 방미보다 이번 김영철의 방미 결과는 유동적이었기 때문에 북한 매체들도 워싱턴행이 결정될 때까지 보도를 미룬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01/20180601002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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