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 '격동의 시간']
평양서 북·중의 주장 그대로 강조 "北비핵화는 반드시 단계적으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31일 북한을 방문해 그동안 북한과 중국이 주장해온 '단계적 비핵화'와 대북 제재 해제를 강조했다. 러시아 외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한 것은 2009년 이후 9년 만이다. 라브로프는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예방하고 러시아 방문을 요청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회담 직후 "대북 제재가 해제되기 전까지는 북핵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러시아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한 번에 비핵화가 이뤄질 수 없다"며 "반드시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또 매 단계 뭔가 오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분명한 사실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에 관한 논의 시작 때 (대북) 제재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비핵화 방식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북한이 원하는 보상 문제부터 강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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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외무장관, 9년만에 평양 방문 세르게이 라브로프(왼쪽) 러시아 외무장관이 31일 북한 평양에서 김정은(오른쪽) 국무위원장과 대화하며 걷고 있다. 러시아 외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한 것은 2009년 이후 9년 만이다. /TASS 연합뉴스
라브로프는 이날 김정은에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남북 간 판문점 선언에 대해 매우 높게 평가한다"며 "실행을 도울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고 러시아 언론이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라브로프의 평양 방문에 대해 "러시아가 해야 할 역할을 발휘하는 것에 대해 환영한다"고 했다.

북·중·러가 6월 12일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급속도로 밀착하는 모양새다. 6월 초로 예정된 중·러 정상회담까지 포함하면 미·북 대화 국면이 시작된 이후 70여일간 북·중, 북·러, 중·러 정상이나 외교장관이 만난 것만 7차례에 이른다. 북·중·러는 북한 핵무기 반출 등 초단기간 일괄 타결 방식의 비핵화를 선호하는 미국에 맞서 '단계적 해법'을 주장하며 공동 전선(戰線)을 펴는 양상이다. 과거 6자 회담 때와 같이 '북·중·러 대(對) 한·미·일' 교착 상태가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움직임은 지난 3월 25일 김정은의 중국 방문으로 시작됐다. 김정은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취하면 비핵화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북한 경제사절단이 중국 전역을 시찰했다. 최근에도 '김정은의 집사'라고 불리며 미·북 정상회담 의전(儀典)을 총괄하는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이 베이징을 비공개 방문하기도 했다.
 
중국과 러시아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4월 4일 러시아를 방문해 다음 날 라브로프 외교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한반도의 핵문제는) 단계를 나눠 동시에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주일 전 1차 북·중 정상회담 때 김정은이 언급한 '단계적 동시 조치' 구상을 되풀이한 셈이다. 푸틴 대통령이 6월 8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면담할 때도 한반도 문제가 거론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북·중·러 3자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중·러의 활발한 움직임에 대해 "한·미 동맹을 약화시켜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시도"라고 했다. 미·북이 단기간 비핵 화에 합의할 경우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여지가 줄어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얘기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이 원하는 대북 제재 해제를 도우면서 동시에 비핵화 협상 단계를 최대한 늘려 한·미 연합 훈련 축소,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철회 등 자신들의 안보 이익을 얻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01/20180601001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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