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 '격동의 시간']

美, 천안함 주범·독자제재 대상 김영철에 일시적 입국 허용
金, 폼페이오와 조율 잘되면 워싱턴 날아가 트럼프 만날 듯
"김정은 친서까지 전달한다면 美北정상회담 진전의 신호"
 

북한의 대미 협상 창구 역할을 맡아온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미(訪美)는 미·북 정상회담의 성패를 좌우할 중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영철은 2000년 조명록 인민군 차수가 김정일의 특사 자격으로 백악관을 방문해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난 지 18년 만에 미국을 찾는 최고위급 북한 인사다. 김영철은 2010년 천안함 폭침 배후로 지목돼 미국의 독자 제재 대상에 올라 있다. 미국 정부가 미·북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여행제한 조치를 일시 면제해 입국을 허용한 것이다.

김영철은 카운터파트 격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만나 미측이 의심하고 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화 의지'를 재확인시키고, 정상회담 핵심 사항에 대한 최종 조율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29일 외교 소식통은 "미·북이 판문점 의제협의에서 최소한의 공통분모는 발견했지만 김영철-폼페이오 급에서 풀어야 할 문제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유엔 있는 뉴욕에서 비핵화 협상할 듯

김영철은 29일 오전 10시쯤 고려항공 JS151편을 타고 베이징에 도착했다. '외교통'이 아닌 김영철을 보좌하기 위해 최강일 북한 외무성 북미국 국장대행이 동행했다. 김영철은 당초 이날 오후 베이징에서 워싱턴으로 떠나는 항공편을 예약했지만, 이후 30일 뉴욕행 항공편으로 변경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루 동안 중국에 머무는 것은 중국 측과 그동안의 미·북 협상 경과를 공유하고 향후 전략을 협의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영철의 행선지가 뉴욕인 것과 관련, 외교 소식통은 "바로 워싱턴으로 가는 것과 뉴욕부터 들르는 것은 의미가 전혀 다르다"고 했다. 뉴욕은 북한의 유엔 대표부가 있고 평소 미·북 소통 창구인 '뉴욕채널'이 이뤄지는 곳이다. 북한의 고위급 관리들도 비교적 자주 뉴욕을 방문했다. 작년 9월 리용호 외무상이 유엔총회에 참석했고, 2011년에는 김계관 6자회담 수석대표가 뉴욕에서 미국과 회담을 했었다.

18년前 조명록, 군복 입고 클린턴 만나 - 지난 2000년 조명록(왼쪽) 당시 북한 총정치국장이 미국을 방문해 빌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은 조명록 이후 미국을 방문하는 최고위급 인사다.
18년前 조명록, 군복 입고 클린턴 만나 - 지난 2000년 조명록(왼쪽) 당시 북한 총정치국장이 미국을 방문해 빌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은 조명록 이후 미국을 방문하는 최고위급 인사다. /AFP 연합뉴스

하지만 워싱턴은 수도라는 상징성을 감안해, 미국은 적대 국가 인사들에게는 관계 정상화와 관련한 논의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워싱턴 땅을 밟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유엔 주재 북한 외교관들도 특별 허가가 없으면 워싱턴을 방문하지 못한다. 북한 고위급 관료가 워싱턴을 방문한 것은 2000년 10월 조명록이 마지막이다. 결국 무산되기는 했지만 당시 미·북 양국은 수교를 염두에 두고 적대 관계 청산 등의 내용을 담은 코뮈니케도 채택했었다.

◇트럼프 만나면 18년 만의 백악관 방문

이 같은 이유 때문에 폼페이오 장관이 뉴욕으로 이동해 김영철과 1차 회담을 하고, 견해차가 좁혀지면 워싱턴의 국무부로 옮겨 2차 회담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영철이 김정은의 친서를 휴대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백악관을 방문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예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3월 말과 5월 초 두 차례 방북 때 김정은과 모두 만났다. 상호주의에 따라 김영철도 백악관 방문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비핵화와 관련한 가시적인 성과가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영철을 만나면 정치적인 부담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김영철이 트럼프를 만나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한다면 양측이 미·북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 상당히 진전된 합의를 했다는 신호가 될 것"이라고 했다. 2000년에도 조명록은 국무부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면담하고, 백악관으로 이동해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김정일의 친서를 전달했었다.

폼페이오-김영철 회담에서는 미국이 주장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의 신속한 이행과 북한이 요구하는 우선적 '체제 보장'을 어떻게 절충하느냐가 여전히 가장 큰 쟁점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은 28일(현지 시각) 트럼프 대통령 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전화 통화 후 성명에서 "북한 핵무기의 완전하고(complete) 영구적인(permanent) 해체를 달성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미국이 그동안 'CVID'와 'PVID' 용어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완전한(C)'과 '영구적인(P)'의 차이를 놓고 해석이 분분했으나, 이번에는 아예 둘을 나란히 놓은 새로운 용어를 쓴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30/20180530002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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