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詩人, '진달래꽃' 읊었던 평북 영변에만 核 시설 390개
완전히 核 폐기하고 속죄해야 실향민 가족 응어리도 풀릴 것
 

이한수 문화1부 차장
이한수 문화1부 차장

북한 영변 관련 뉴스에 더 눈길이 간다. 어머니 고향이 평안북도 영변이다. 시인 김소월이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노래했던 그 진달래꽃 마을이다. 높은 산에 둘러싸여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하나뿐인 지형이라고, 북한 핵 시설이 그래서 들어섰을 거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동구(洞口) 밖 깎아지른 바위엔 임경업 장군이라 전해지는 인물이 그려져 있다고 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영변에만 핵 시설 건물이 390동에 이른다고 한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누구보다 바란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북이 고향인 이들, 그 자식들의 바람이 더 그럴 것이다. 통일까지는 아니라도 입경(入境) 도장 받아 서로 안전하고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면 좋겠다. 어머니 고향 땅 약산(藥山)에 붉은 진달래가 정말 지천으로 피는지, 소학교 때 소풍 갔다던 묘향산 암자에 서산대사 자취가 아직 남아있는지 직접 가서 본다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다.

어머니 집은 영변 인민위원회 건물 건너편에 있었다. 동네에서 제법 큰 집이었다 한다. 몇 년 전 구글이 인공위성으로 찍은 북한 지역을 온라인으로 공개한다는 기사를 읽은 어머니는 "고향 모습을 진짜 볼 수 있느냐"고 했다. 인터넷을 통해 영변 땅을 찾으려 했는데 어쩐 일인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후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히 지내면서 고향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다.

필자가 고교생이던 1983년 어머니는 KBS 이산가족 생방송을 보며 연일 눈시울을 붉혔다. 6·25전쟁 중 함께 내려오지 못한 오빠 얼굴이 생생하다고 했다. 의학전문학교에 다니던 오빠는 그때 신의주에 있었다 한다. 나중을 기약했는데 영영 이별이 됐다.

어머니는 북 정권을 믿지 않았다. 과거 남북 정상회담으로 '화해 무드'가 조성됐을 때도 불신(不信)은 바뀌지 않았다. 금강산 육로 관광이 열렸을 때 "한번 구경 가시라"고 권했다. 어머니는 싫다고 했다. "그곳이 내 고향도 아니고… 김정일이한테 돈을 퍼줄 수는 없다"고 했다.

자식에겐 한없이 너그럽고 헌신적이던 어머니에게 그렇게 단호한 면이 있었다니 놀랐다. 결국 어머니 판단이 옳았다. 북 정권은 남에서 챙긴 돈으로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았다.

북핵 문제 해결을 놓고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기대가 없지 않다. 한 차례 판을 엎은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북한의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영구적인 폐기가 목표"라고 밝혔다. 예정대로 내달 12일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면 큰 진전을 이룰지 모른다. 그러나 우려 또한 크다. 북 정권이 뒤로 딴짓하는 일을 되풀이할 것이란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번엔 다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북 정권이 모든 '쇠붙이'를 완전히 폐기하고 개혁·개방에 나서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것이 지난 70년간 저지른 악행을 이제라도 속죄하는 길이다. 트럼프 대통령 말대로 번영으로 가는 길이다. 800만명 추산 실향민과 가족의 바람도 그럴 것이다. 두고 온 고향을 기억하는 이가 해가 갈수록 줄고 있다.

어머니는 끝 내 고향에 가지 못했다. 올해 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셨다. 북한 핵이 완전히 폐기되고, 자유로운 여행길이 열리고, 북녘 동포가 번영의 과실(果實)을 온전히 누리는 그날이 오면 어머니 대신 진달래꽃 핀 영변에 다녀오려 한다. 그러나 냉정한 검증 없이 '화해 무드'만 내세운다면 북 정권에 돈을 퍼줄 수는 없다. 과연 어머니 고향에 갈 수 있을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29/20180529037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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