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臨政을 "부패 타락"으로 매도… 한국 좌파 진영은 알고나 있나
白凡이 염원한 건 '자유의 나라'… '자유' 빠진 교과서에 분노할 것
 

김기철 논설위원
김기철 논설위원
'세카이(世界)'는 전후(戰後) 일본 진보 좌파를 대변하는 시사 잡지다. 김일성은 1971년부터 20년간 이 잡지와 열 번이나 독점 인터뷰를 했다. '세카이'가 북한에 우호적 보도를 해온 친북 지식인들의 본거지였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1985년 광복 40주년을 맞아 실은 인터뷰에서 백범 김구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백범은 광복 전 상하이 임시정부에 앉아 많은 공산주의자를 살해한 유명한 반공주의자이다.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김구라면 치를 떨었다."

이어 1948년 남북 협상차 평양에 온 백범의 말이라며 소개한다. "(김일성) 장군은 무기를 들고 투쟁하여 나라의 독립을 쟁취했지만 자신은 공산주의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반대한 것을 용서해달라고 말했다" "당신과 같은 공산주의자라면 손을 잡고 조국 통일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북으로 돌아오게 되면 여생을 보낼 수 있는 과수원이라도 하나 제공해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긴 노(老)독립투사가 서른 줄의 김일성에게 이런 말을 했을 리 없다. '세카이'는 이 인터뷰 기록과 번역을 북한 측이 제공한 대로 게재했다고 밝혔다. 김일성과 북한 정권이 백범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했는지 보여준다. 북한 공식 역사서 '조선전사'는 임정이 "부패 타락한 부르주아 민족운동 상층 분자들에게 조작됐다"며 깔아뭉갰다.

백범은 요즘 좌파 진영이 통일 운동의 원조(元祖)로 떠받드는 아이콘이다. 백범을 존경하는 지도자로 손꼽고 무슨 일만 있으면 백범기념관에 몰려가 기념행사를 벌인다. 이들이 과연 백범의 독립 투쟁과 정치 이념을 제대로 들여다봤는지 의문이다. 백범의 이력 대부분은 소련을 이념의 조국으로 삼은 좌파 공산주의자들과 벌인 투쟁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범이 어떤 이념을 지향한 정치가였는지는 1947년 11월 발표한 '나의 소원'을 읽으면 한눈에 알 수 있다. 백범은 "일부 소위 좌익의 무리는 혈통의 조국을 부인하고 소위 사상의 조국을 운운하며 혈족의 동포를 무시하고…"라며 분개한다.

백범은 "나의 정치 이념은 한마디로 표시하면 자유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자유의 나라여야 한다"고 했다.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독재, 그중에서도 철학을 기초로 하는 계급독재가 가장 무섭다고 했다. "지금 공산당이 주장하는 소련식 민주주의란 것은 이런 독재정치 중에서도 가장 철저한 것이다." 열 쪽 남짓한 짧은 글에서 백범은 '자유'란 단어를 서른 번 넘게 써가며 공산당 계급독재에 반대했다.

백범이 떠난 지 70년 가까운 요즘, 이 정부에서 만드는 역사 교과서는 '자유 민주주의'의 '자유'를 삭제하고 북한 세습 체제 비판도 금기시한다. 교육부는 익명의 '전문가'에게 자문했다면서 "자유를 빼도 민주주의 기술에는 문제가 없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교과서 집필 기준 개편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한 교수가 쓴 칼럼을 보면 왜 이 정부를 편드는 일부 역사학자가 기를 쓰며 자유를 지우고 북한을 감싸고 도는지 충분히 짐작된다. "보수의 지배 서사였 던 자유 민주주의와 반공주의도 힘을 잃었고…." 자유와 반공이 보수의 이념이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범은 '나의 소원'에서 "좋은 민주주의의 정치는 좋은 교육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썼다. 소련식 민주주의를 혐오했던 자유주의자 백범이 다시 살아온다면, 이 정부의 비뚤어진 교과서로 현대사를 배울 아이들을 보고 기가 막혀 분통을 터뜨릴 것 같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28/20180528034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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