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2차 남북정상회담이 26일 오후 3시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극비리에 진행됐다. 지난 24일 오전 11시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의식을 돌입한지 54시간 만이다. 그 사이 한반도는 미북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놓고 홍역을 치뤘다. 깜짝 정상회담이 개최되기까지 54시간을 재구성했다.

◇北,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폐기 (24일 오전 11시 / H+00:00)
북한은 지난 24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 17분까지 5시간 17분 동안 한·미·영·중·러 5개국 기자단 3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 방식으로 폐기했다.
핵실험장의 4개 갱도 중 2, 4, 3번 갱도 순으로 폭파했으며 핵실험장 부속 시설인 관측소 2곳, 단야장(鍛冶場·갱도 설비용 작업장), 생활건물 본부 등 5곳, 군(軍) 막사 2개 동도 폭파했다. 1번 갱도는 북한이 지난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이후, 방사능 오염으로 사실상 폐쇄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지난 24일 오전 11시 한·미·영·중·러 5개국 기자단 3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했다./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은 핵실험장 폐기 의식 종료 직후, 핵무기연구소 명의의 성명을 내고 “투명성이 철저히 보장된 핵시험장 폐기를 통해 공화국 정부의 평화 애호적 노력이 다시 한 번 확증되었다”며 “핵시험 중지는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날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는 전문가들은 배제하고, 언론인들만 참관한 상태로 진행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전문가들에 의한 철저한 검증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 트럼프 편지공개 ‘싱가포르 회담 적절치 않다’ (24일 밤10시30분 / H+11:30)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 후 나온 미국의 반응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트럼프는 ‘환영’ 논평 대신 ‘거절의 편지’를 내밀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4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싱가포르 회담은 적절치 않다”며 “(북한이)만약 마음을 바꾼다면 망설이지 말고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써달라”고 말했다./TV조선 캡처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오전(현지시각, 한국시간으로 24일 밤 10시 30분 경) 공개된 편지에서 “매우 슬프게도 당신(김정은)은 공개적으로 적대적인 태도와 분노를 표출했다”며 “현 상황에서 미북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은 나에겐 매우 부적절하다고 느껴졌다”고 밝혔다. 다만 일말의 여지는 남겨뒀다. 그는 편지 말미에 “만약 마음을 바꾼다면 망설이지 말고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써달라”고 했다.
이어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미북정상회담 취소는 북한과 세계에 엄청난 후퇴”라며 “김정은이 북한 주민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계관 담화문 발표 “美와 마주앉을 용의 있다” (25일 아침 7시 30분 / H+20:30)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

트럼프의 강경한 입장에 대응하는 북한의 태도는 ‘꼬리 내리기’였다. 김계관과 최선희 등의 입을 빌려 “조미수뇌회담 개최를 재고려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내왔던 북한은 25일 오전 7시30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김계관 명의의 담화문에서 “매우 유감스럽다”면서 “(미측과)아무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김정은)께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면 좋은 시작을 뗄수 있을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를 위한 준비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왔다...첫술에 배가 부를 리는 없겠지만 한가지씩이라도 단계별로 해결해나간다면 지금보다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김계관은 이날 담화문 서두에서 ‘위임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따뜻하고 좋은 반응이다” (25일 밤 9시 / H+34:30)
북한의 유감 표명 담화문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결 누그러진 태도로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계관 외무성 1부상의 성명 발표 이후 트위터에 반응을 남겼다. /트위터

25일 오전 7시(현지시각)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으로부터 따뜻하고 생산적인 성명을 받은 것은 매우 좋은 소식”(Very good news to receive the warm and productive statement from North Korea)이라며 “이러한 북한의 행보가 어디로 흘러갈지, 장기적으로 번영과 평화를 가져다줄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6월12일 회담 열릴 가능성있다” (25일 밤 11시 / H+36:30)
같은 날 오전 9시 미국 해군사관학교 졸업식 참석을 앞두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또 다시 ‘폭탄급’ 발언이 나왔다. 이번에는 ‘긍정의 폭탄’이었다.
 
미 매릴랜드주 아나폴리스에 위치한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 이 행사 참석 직전 기자들과 만나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있다’며 전날 자신의 발언을 뒤집었다. /연합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지금 대화하고 있다”며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봐야 하지만 (정상회담이) 6월 12일에 열릴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정상회담 개최를 매우 원하고 있고, 우리도 회담 개최를 원한다”고 말했다.

◇北, 정상회담 제안…남북, 정상회담 준비 착수 (25일 밤~26일 오전 / H+48:00)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25일 오후부터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서훈 국정원장에게 김정은의 구상이라며 “격의없는 소통을 했으면 한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참모들은 문 대통령에게 ‘핫라인 통화’ 보다는 ‘대면 대화’를 건의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의 실무진이 통화를 통해서 협의하는 것보다 직접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대화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서 전격 회담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승락이 떨어진 뒤, 남북간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실무협의가 진행됐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승락한 뒤, 25일 밤부터 26일 오전까지 실무 준비를 해 26일 오후 정상회담이 개최됐다”고 말했다.

◇2차 남북정상회담 극비리에 개최 (26일 오후 3시~5시 / H+54:00)
남북 정상이 26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정상회담을 극비리에 가졌다. 의전 행사는 최소화하고 실질적인 대화에 초점을 맞춘 정상회담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은 26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극비리에 정상회담을 진행했다./청와대 제공

의제는 단연 미북정상회담 개최 여부였다. 문 대통령은 27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위한 우리의 여정은 결코 중단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이를 위해 긴밀히 상호협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은 철통 보안 속에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판문점으로 이동할 때 4·27 정상회담 당시 이용한 검정색 벤츠 차량이 아닌 은색 벤츠 차량을 이용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 경호 규모도 최소화했다. 청와대가 공개한 문 대통령의 판문점 도착 모습을 보면 평소보다 훨씬 적은 수의 차량이 동행했다.
 
회색 벤츠차량을 타고 북측 판문각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연합

청와대는 회담 종료 후 3시간이 지난 저녁 8시 쯤 기자단에 회담 개최 사실을 공개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출입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가졌다”며 “두 정상이 이날 회담에서 4.27 판문점 선언의 이행과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27/201805270225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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