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北 회담 안 열리거나 실패하면 전쟁 위기 더 높아질 것
美의 '즉각적 非核化' 방안과 北의 '단계적 조치' 팽팽한 대립
트럼프는 협상 붕괴 않는 線에서 강력 압박해 실질적 양보 얻어야
 

수미 테리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
수미 테리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
'북한 드라마'가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 회담 전격 취소를 발표한 지 24시간도 되지 않아서 회담 재개 가능성을 언급했다. 회담은 당초 예정된 6월 12일을 넘길 수도 있지만, 개최 가능성은 남아 있다. 미·북 협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비핵화의 구체적 내용과 절차에 대한 한·미(韓美) 간 합의가 절실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이란과의 핵 협정 파기를 통해 극도로 높은 기준을 스스로 정했다. 이란과의 핵 협정은 사실상 광범위한 비핵화(denuclearization) 조치와 적극적인 검증 절차를 담고 있었다. 핵 물질의 97%를 포기하고 수천 개의 우라늄 농축용 원심 분리기를 폐쇄한 이란은 당시 향후 최소 10~15년간에 걸쳐 핵 개발에 대한 엄격한 제한 조치까지 수용했다.

트럼프는 이 같은 이란 핵 협정에 대해 "정신 나갔다"거나 "당혹스럽다"고 비판했다. 때문에 그는 북한으로부터 이보다 낮은 수준을 받아들일 수 없고, 받아들여서도 안 되는 처지가 됐다. 트럼프는 이란이 핵 협정 기한 만료 이후에는 핵무기 개발을 재추진할 수 있으며, 탄도 미사일 개발이나 테러단체 지원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 핵 협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과의 핵 협상에서도 기준점이 될 수 있다. 북한과의 협정은 시효가 없는 항구적인 것이 되어야 하며, 북한의 탄도 미사일이나 생화학 무기 개발 같은 내용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비핵화 협상은 핵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영구적으로 중단하는 조치를 담아야 한다. 핵무기 생산·검증·보관, 핵분열성 물질 비축을 포함해 모든 공개·비공개 장소에 대해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실시해야 한다. 미(未)신고 시설에 대해서도 즉각적인 사찰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최종 단계는 모든 핵 물질을 반출하거나 파괴하고 핵탄두를 포기해서 북한의 핵 시설을 사용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핵보유국들을 통틀어 봤을 때 이 단계까지 합의한 사례는 많지 않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우크라이나 등 일부 국가만 그랬을 뿐이다. 두 나라는 정권 교체나 북한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변화를 겪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리비아의 카다피는 최근 가장 철저한 군축 조치를 취했지만, 두 나라는 지금 북한과 같은 사실상의 핵 보유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었다.

'리비아 모델'을 북한에 언급하는 것은 협상 전망을 어둡게 하는 것과 같다. 김정은은 카다피 정권이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을 포기하고 8년 뒤 몰락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김정은은 리비아가 핵무기를 보유했다면, 미국이 리비아를 폭격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존 볼턴 백악관 안보 보좌관은 북한과의 핵협상에서 리비아가 본보기라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동의하기 힘든 제안이다. 북한은 모든 단계마다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 단계적 조치를 선호할 것이다. 트럼프는 '리비아 모델'이라고 명명하지는 않았어도 북한이 먼저 중대한 조치를 취하는 즉각적 비핵화 조치를 주장할 것이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회담의 실패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회담이 성공적 결과를 내놓지 못한다면, 미국으로선 선택할 게 많지 않다. 최근 수개월간 북한이 정상 회담과 외교적 대응에 나선 결과, '최대한의 압박'은 힘을 잃고 있다. 김정은과 두 차례 만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대북(對北) 강력 제재에 대한 열성은 약화됐다. 북한산 해산물이 중국 내 국경 인근 도시 시장에 속속 등장하고 있고,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국 정부도 UN 안보리의 제재를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북한과의 경제 협력을 추진하는 등 지난달 판문점 선언 실행을 위해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미·북 회담이 열리지 않거나 실패하면 작년 가을의 무력 위협 국면으로 되돌아가 전쟁 위기가 더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정상 회담이 실제로 열린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허울 좋은 겉치레가 아니라 실질적인 비핵화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김정은은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보상을 받아내기 위해 진행 과정을 가능한 한 장기화하려 할 것이다. 외교적 협상이 완전히 붕괴되지 않는 한도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실질적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그것은 그가 경험 많고 노련한 외교관 같은 패기를 갖고 있는지 시험받는 도전이 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27/20180527026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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