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2번 갱도에서 ‘쾅’ 하는 폭발음이 울린 것은 24일 오전 11시 무렵이었다. 그로부터 12시간 후, 워싱턴에서는 ‘편지 폭탄’이 터졌다.
“친애하는 국무위원장께”라는 관습적이고도 정중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트럼프의 편지는 “회담 하고 싶으면 다시 연락해”로 끝났다. 6월 12일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지난 며칠 사이 나온 김계관과 최선희의 발언이 트럼프를 열받게 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북한 외무성 부상인 최선희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마이클 볼턴 안보보좌관을 공격했다. <미국 부대통령(부통령) 펜스는 북조선이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느니, 북조선에 대한 군사적 선택안은 배제된 적이 없다느니,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라느니 뭐니 하고 횡설수설하며 주제넘게 놀아댔다...대미 사업을 보는 나(최선희)로서는 미국 부통령의 입에서 이런 무지몽매한 소리가 나온 데 대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밤(한국시각) ‘6월12일 북한과의 예정된 회담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폭탄선언했다. /연합

북한이 미국관료를 공격하는 건 낯설지 않다. 과거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나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불검둥이’라는 표현을 썼던 걸 생각하면 ‘주제 넘게 놀아댔다’는 정도의 표현은 과한 것도 아니다.

진보 성향 언론들은 강경파 펜스와 볼턴이 ‘대화파’ 트럼프를 압박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북한이 뭘 특별히 잘못해서는 아니라는 뉘앙스다. 북한이 핵실험장을 폭파하는 ‘성의’를 보였는데, 미국이 ‘뒤통수’를 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국제사회 통상적 룰’에 비춰볼 때, 미국이 반칙한 것 같다는 주장도 100% 틀린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김정은 식으로 김정은을 물먹였다. 북한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25일 아침에 나온 북한 성명은 ‘당신이 밥상을 엎은 것이 불쾌하지만, 생각이 있다면 밥상을 다시 차리겠다’는 식이었다. 흥미로운 반응이다.

‘훈육’ 방식에는 ‘이데올로기 차이’가 극명히 존재한다. 아이 교육이나 반려견 교육이나 마찬가지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며 ‘내재적 특성’을 이해하는 방식, 즉 아테네식 훈련 방식이 하나다. 다른 하나는 ‘잘못된 습성은 강한 반복 훈련으로 바로 잡는다’는 일종의 스파르타식 방법이다. 과거 ‘개 훈련’은 대개 스파르타식이었으나, 요즘은 TV에 자주 나오는 강형욱 애견 훈련사 방식이 대세다.

서방이나 공산진영이나, 좌파건 우파건, 박근혜 정부건 문재인 정부건, 북한을 어린아이 혹은 반려견 처럼 대해왔다. 북한은 ‘글로벌 스탠다드’의 ‘ㄱ’자도 지키지 않았다. 그런 태도를 ‘기본 3점’으로 깔아두고 시작했다.

그에 반응하는 태도만 있었을 뿐이다. “북한은 특수한 나라다,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 vs. “이런 버르장머리를 봤나, 어디 한번 죽어볼래?”
어느 쪽도 북한을 ‘글로벌 스탠다드’로 끌어올리지 못했다. 북한에 ‘호구’가 되거나, 북한과 척을 지는, 둘 중 하나의 대응만 있었다.

 
25일 자정 무렵 (한국시각) 미국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트럼프 대통령. 앞서 공개한 ‘회담 취소’ 편지를 확인하는 내용이었다. /뉴시스
24일밤 트럼프의 편지와 백악관 기자회견을 보면서, 기자는 트럼프가 북한을 ‘정상국가’로 대접하는 첫번째 정치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회담을 한다면서 ‘입에 걸레를 물고’ 상대국을 비난하는 나라는 정상국가가 아니다. 정상회담을 한다면서 사전준비 회담 약속도 안 잡는 건, ‘안하겠다’는 사인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다. 정상적인 나라끼리는 말이다. 트럼프는 그걸 파고 들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운운하면서 우리 정부는 끊임없이 북한 태도를 ‘쉴드’쳐 왔다. 동네 개망나니를 키우는 부모가 ‘그래도 바탕은 착한 아이’라며 사탕을 쥐어주는 식이었다.

트럼프의 편지를 다시 읽어봤다.
“친애하는 국무위원장께...나는 당신과 함께 하려고 했습니다. 언젠가 당신을 만나게 되기를 고대합니다. 당신에게는 핵무력이 있습니다만, 우리 것은 그보다 더 강력합니다. 인질들을 풀어줘서 감사합니다. 그들은 지금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습니다. 아름다운 제스처였고, 매우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이 중요한 회담을 가져야겠다고 마음이 바뀐다면, 주저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를) 보내십시오...미국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사탕 아닌 ‘담배 한 대’를 쥐어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어이 김형, 이거 지금 뭐하자는 거요?” 사탕 한 알이 아닌 담배 한 개피를 받아든 김정은, 응석 부릴 데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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