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관계 악화 우려...中 배후론 제기하는 미국, 美 탓 하는 중국
무역협상⋅대만 문제⋅남중국해 분쟁 놓고 미중 힘겨루기 가열 전망
6월 2~4일 美 상무장관 訪中⋅미 하원 대만 군사협력 강화 법안 통과
 
미북 정상회담이 취소되면서 중국 책임론과 중국 역할론이 충돌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두번째 만난 다롄 회동을 1면에 전한 5월 9일자 인민일보. 인민일보는 25일자에 미북 정상회담 취소 소식을 국제면 단신으로 처리했다 /인민일보 캡처

내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이던 미북 정상회담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격 취소하자 ‘중국 책임론’과 ‘중국 역할론’이 충돌하고 있다. 미북 정상회담 취소가 △한반도 비핵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중국의 북한 후원자 역할 확대로 인한 북한의 강경 입장 표출 탓이라는 ‘책임론’과 △북미 정상간 중단된 만남을 구하기 위해 중국 역할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역할론’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북한 후원자 나선 중국 책임론 부각...북한 비핵화 단계 해법 지지

우선 중국은 책임론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취소 배경으로 지적한 북한의 태도 변화 배후로 중국을 잇따라 지목한 때문이다.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2일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두 번째 만난 다음에 태도가 좀 변했다고 생각한다"며 "그것에 대해 기분이 좋다고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김정은과 시 주석의 두번째 회담 그건 좀 놀라운 만남이었다” 며 김 위원장이 시 주석과 두 번째 회담을 한 뒤로 큰 차이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북중 정상회담 직후 평양을 찾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당초 이 자리에서 북한의 핵프로그램 폐기에 대한 추가적 약속을 받아낼 것으로 기대했으나 이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오히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이후 북한이 대미 공세로 전환해 트럼프 대통령의 의구심만 키웠다는 것이다.

중국 언론들은 미북 정상회담 취소를 북한이 겁먹었을 ‘리비아식 비핵화(선 핵포기, 후 보상)’를 강조해온 미국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중국 책임론’이 부각되면서 한반도 비핵화에 적극적인 역할 발휘를 공개 천명해온 중국 당국의 행보가 신중해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도 있다.

시진핑 주석은 2013년 3월 국가지도자에 오른 이후 한 차례도 만나지 않던 김정은 위원장을 지난 3월말 베이징에서 만난데 이어 5월 다롄에서 회담을 하는 등 공격적인 북중 친밀 행보를 보여왔다. 김정은 위원장이 제안한 미북 정상회담을 트럼프 대통령이 수용한 이후 북중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진 것이다.

시 주석은 대북 제재가 지속되는 와중에도 두차례의 북중 정상회담 후 북한 노동당 '친선 참관단'까지 불러 들여 경제협력까지 모색했다. 박태성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이끈 참관단은 지난 14일부터 24일까지 11일간 베이징 시안 상하이 항저우 닝보 등을 돌며 중국 경제모델 모습은 물론 경협을 모색했다.

중국은 특히 비핵화 해법을 놓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일괄타결을 주장해온 미국과 단계적 진행을 고수해온 북한 사이에서 북한 편에 서 있었다.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겸 외교부장은 23일(현지 시각) 워싱턴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과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비핵화 절차 또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적절한 시기’에 북한의 정당한 안보 우려를 다룰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CVID 타결 이전에 대북 제재를 완화해야함을 시사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시 주석도 김 위원장과 두번째 회담을 한 지난 5월 8일 트럼프 대통령과 가진 통화에서 “북한의 합리적인 안전 우려를 고려해야 한다”며 “양측이 단계적인 행동을 취하며 회담과 협상을 통해 각자의 우려를 해소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쑤샤오후이(蘇晓辉) 중국국제문제연구원 국제전략연구소 부소장은 미북 정상회담 취소에 대해 비핵화 방법론을 놓고 북한의 단계적 접근과 미국의 일괄타결 방식 조율이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최대 수혜자?...역할론 부각

NYT는 미북 정상회담 취소로 시 주석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었다며 중국이 가장 유리한 위치에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차이나 판타지'의 저자 제임스 만은 "정상회담을 연기하는 것 뿐만 아니라 최대한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이 시진핑으로서는 이익"이라며 "특히 무역문제에 있어 중국에 대미(對美) 지렛대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으로서는 북한과 미국의 대화가 지연되는 문제를 자신과 미국 사이의 무역 협상에서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게 NYT의 분석이다. 청샤오허(成曉河)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부교수는 "북미회담 취소는 중단된 만남을 구하기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중국에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역할론’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다.

하지만 미중 무역마찰 속에서도 “나의 좋은 친구”라면서 시 주석에 대한 호감을 놓치 않던 트럼프 대통령이 22일 시 주석을 “세계 최고의 포커플레이어”라며 불신을 보이면서 ‘중국 역할론’에 한계가 지워질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시 주석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그는 내친구”라고 덧붙였지만 중국에 대한 불신을 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핵 문제로 꼬인 미중 관계 악화가 미중 무역협상, 대만 문제, 남중국 분쟁 등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미중 무역협상의 중국 대표인 류허(劉鶴) 부총리는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과 통화를 갖고 내달 2~3일 로스장관이 방중해 미중 경제 무역문제를 계속 협상하기로 했다고 신화통신이 25일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무역전쟁과 상호관세 부과를 중지하기로 한 지난 17~18일의 미중 워싱턴 협상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다”며 협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었다.

또 24일 미국 하원이 미국과 대만간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2019 회계연도 국방수권법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대만 문제가 미중 관계 악재로 다시 부각될 전망이다. 이 법안은 중국이 반발해온 미국의 중국 통신장비업체 ZTE에 대한 추가 제재 내용도 담겼다. 미국 정부기관이 ZTE 제조 장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남중국해 분쟁 불씨도 살아있다. 왕이 국무위원은 폼페이오 국무장관과의 공 동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남중국해의 자국 관할 섬에 민간용 및 방위 시설을 건설하는 것은 국제법에 따른 자위권으로 군사화와는 무관하다"면서 "미국이 괌과 하와이에 군사시설에 배치하는 것보다 규모가 훨씬 작으므로 이에 대해 과장할 필요가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우리는 남중국해의 군사화에 대해 일관되게 우려를 표명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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