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정상회담 취소]

김계관 이어 최선희까지 '美 안보라인' 공격하자 인내의 한계 넘어
회담 열어봤자 완전한 北비핵화 못얻고 외교 부담만 커질것 우려
백악관 "아직 대화 채널은 열려있다" 추후 회담 가능성은 남겨둬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각) 미·북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것은 지난 10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담하겠다"고 한 지 정확히 2주일 만이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했다고 발표한 직후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의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보낸 서한을 직접 읽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김정은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최근 당신들의 성명에 나타난 극도의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에 근거, 애석하게도 지금 시점에서 회담을 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미·북 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의제에 관한 양측 입장 차가 컸던 데다, 북한이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 등을 향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면서 결국 회담이 취소에 이르게 됐다는 분석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싱가포르로의 이동·수송 계획 등을 논의하고자 최근 며칠간 북측에 연락을 시도했으나 북측으로부터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폼페이오, 美의회서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보낸 편지 큰소리로 읽어 - 24일 오전(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6·12 미·북 정상회담 취소 방침을 공개편지를 통해 밝힌 이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미 상원 외교위원회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앞으로 보낸 회담 취소 통보 편지 전문을 읽었다.
폼페이오, 美의회서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보낸 편지 큰소리로 읽어 - 24일 오전(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6·12 미·북 정상회담 취소 방침을 공개편지를 통해 밝힌 이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미 상원 외교위원회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앞으로 보낸 회담 취소 통보 편지 전문을 읽었다. /AP 연합뉴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듣고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생각해 회담 준비에 임했는데, 김정은이 얘기하는 비핵화가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와 다르다는 걸 이제야 확실히 알게 된 듯하다"고 했다. 미국의 목표인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할 수 없다면 지금 북한과 회담에 응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로 거론한 '최근 성명'은 이날 북한 외무성 최선희 부상의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 비판 발언을 지칭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백악관 관계자도 "펜스 부통령 비난이 인내의 한계였다"고 했다. 앞서 지난 21일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협상을 하지 않으면 '리비아 모델'처럼 끝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을 철회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직접적인 미·북 회담 취소 원인으로 펜스 부통령 비난 담화가 거론됐지만, 미·북 간 이상 기류는 이미 지난 16일부터 본격화됐다.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선(先) 핵폐기, 후(後) 보상'의 리비아식 핵폐기를 주장해왔던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맹비난하면서 "미·북 회담을 재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 핵심 인사들이 거론해 온 '리비아식 비핵화'를 사실상 걷어찬 것으로 여겨졌다. 볼턴 보좌관은 이튿날 북한의 성명과 관련해 "미국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에서 후퇴하지 않겠다"고 했다.

북한은 남측에도 '남북 고위급 회담 취소(16일)→풍계리 폭파 남측 기자 취재 거부(18일)→탈북 종업원 북송 요구(19일)'의 순서로 압박 강도를 높이며 '비핵화 허들을 낮추도록 미국을 설득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김정은이 직접 베이징으로 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비공개 회담을 가진 뒤 '볼턴식 완전한 비핵화'에 거부감을 보이자 미 의회 내에서도 '미·북 회담 회의론'이 불거졌다.

미·북 회담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에게 돌아올 '정치적·외교적 책임'에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는 22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싱가포르 회담이 열리지 않아도 괜찮다"며 연기·취소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일각에선 아직 미·북 회담이 완전히 무산된 것은 아니라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정은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마음이 바뀌면 주저 말고 전화·편지를 해달라"고 했다. 이날 백악관 관계자는 "아직 (대화) 채널은 열려 있다"고 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사는 "미국이 완전히 회담 테이블을 거두고 김정은과 마주 앉지 않겠다고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김정은에게 비핵화 준비가 되면 다시 나오라는 트럼프식 압박전술로도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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