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조선일보DB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미북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것은 미국을 향한 북한의 도발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싱가포르 회담 취소를 통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에서 “매우 슬프게도 당신(김정은)은 공개적으로 적대적인 태도와 분노를 표출했다”며 “미·북 정상회담을 지금 개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지난 10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담하겠다”고 한 지 정확히 2주일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적대적인 태도는 최근 북한의 외교 인사들의 대미 도발을 지목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정부 인사들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24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된 담화문에서 “미국이 우리를 회담장에서 만나겠는지 아니면 핵 대 핵의 대결장에서 만나겠는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과 처신 여하에 달려 있다”며 “미국이 우리의 선의를 모독하고 계속 불법무도하게 나오는 경우 나는 조미(북미) 수뇌회담을 재고려할 데 대한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고 했다.

최 부상은 특히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겨냥해 “미국 부대통령(부통령) 펜스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조선이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느니, 북조선에 대한 군사적 선택안은 배제된 적이 없다느니,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라느니 뭐니 하고 횡설수설하며 주제넘게 놀아댔다”며 “대미 사업을 보는 나로서는 미국 부대통령의 입에서 이런 무지몽매한 소리가 나온 데 대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이에 앞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 16일 “우리를 구석으로 몰고 가 일방적인 핵포기만을 강요하려 든다면 우리는 그러한 대화에 더는 흥미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며 “다가오는 조미(북미)수뇌회담에 응하겠는가를 재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도발했다.

북한은 남측에도 ‘남북 고위급 회담 취소(16일)풍계리 폭파 남측 취재 거부(18일) 탈북 종업원 북송 요구(19일)’의 순서로 압박 강도를 높였다. 김정은이 직접 베이징으로 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비공개 회담을 가진 뒤 ‘볼턴식 완전한 비핵화’에 거부감을 보이자 미 의회 내에서도 ‘미·북 회담 회의론’이 불거졌다.

북한의 도발에 백악관은 “북한 비핵화는 ‘리비아 모델’이 아닌 ‘트럼프 모델’”이라며 진화에 나서는 등 미북 회담을 성사시키는 데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도발 발언은 계속됐다. 특히 북한은 24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마친 뒤, ‘핵군축’을 언급하며 자신들의 지위를 ‘핵보유국’으로 못박으려고 했다. 북한 핵무기연구소는 이날 핵실험장 폐기 의식 종료 후 성명을 내고 “핵시험 중지는 세계적인 핵 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취소’라는 최후의 카드를 던지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같이 강경하게 나온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표현했음에도 상대방이 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뉴욕군사학교 시절을 소개하면서 “나는 도비어스 교관을 다루는 방식을 터득했다. 그 방법이란 내가 그의 권위를 존중하고 있음을 넌지시 알리는 것이었다”며 “힘이 센 사람들이 보통 그렇듯이 도비어스도 약점을 발견하면 뒤통수를 노리는 습관이 있었다. 반면 상대방이 강하지만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눈치채면 상대방을 남자로서 대접했다”고 기술했다.

자신이 김정은을 대화 파트너로 존중한만큼 김정은도 자신을 대접해주길 바랐던 기대가 무산되면서 결국 회담 불발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북한은 오늘 핵실험장 폭파 후 핵포기나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을 얘기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북한에 대해 감정이 쌓였다. 자신을 갖고 논다는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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