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정상회담 성사가 불확실해진 상황에서 북한과 중국이 미국에 강공을 펴고 있다. 북한의 대미 라인 핵심 실무자인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24일 “미국에 대화를 구걸하지 않는다”며 ‘핵 대결’을 경고했다. 북한 태도 돌변의 배후로 지목된 중국은 관영 매체를 동원해 미·북 정상회담 무산 가능성의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최 부상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에 낸 담화를 통해 “우리는 미국에 대화를 구걸하지 않으며 미국이 우리와 마주 앉지 않겠다면 구태여 붙잡지도 않을 것”이라며 정상회담 취소 가능성을 또 위협했다. 최 부상은 올 초 북아메리카국 국장에서 부상으로 승진한 북핵·대미 외교 핵심 인사다. 북한의 대미 협상과 접촉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우리를 회담장에서 만나겠는지 아니면 핵 대 핵의 대결장에서 만나겠는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과 처신 여하에 달려 있다”며 “미국이 우리의 선의를 모독하고 계속 불법무도하게 나오는 경우 나는 조미(북한과 미국) 수뇌회담을 재고려할 데 대한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고 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국장(현 부상)이 2017년 9월 26일 러시아 모스크바 브누코보 국제공항에 도착해 청사를 나오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날 북한 은행 10곳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연합뉴스

그는 이번 담화에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지난 21일(미국 시각)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폐기에 합의하지 않으면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와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한 발언을 문제 삼았다.

당시 펜스 부통령은 “대통령이 분명히 했듯, 김정은이 합의하지 않으면 ‘리비아 모델’처럼 끝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리비아 모델은 앞서 17일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카다피 정권 축출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펜스 부통령은 “군사 옵션은 배제된 적이 없으며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라고 했다.

이에 최 부상은 담화에서 펜스 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했다. 그는 “미국 부대통령 펜스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조선이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느니, 북조선에 대한 군사적 선택안은 배제된 적이 없다느니,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라느니 뭐니 하고 횡설수설하며 주제넘게 놀아댔다”며 “명색이 ‘유일 초대국’의 부대통령이라면 세상 돌아가는 물정도 좀 알고 대화 흐름과 정세 완화 기류라도 어느 정도 느껴야 정상일 것”이라고 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2018년 5월 21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핵폐기에 합의하지 않으면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와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폭스뉴스
그는 또 펜스 부통령을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라고 부르고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또 거론하며 “그들(미국의 고위정객들)의 말을 그대로 되받아 넘긴다면 우리도 미국이 지금까지 체험해보지 못했고 상상도 하지 못한 끔찍한 비극을 맛보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날 최 부상의 담화에 앞서 중국 관영 매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중국 배후설을 반박하며 미국과 한국을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강경한 태도와 관련해 지난 17일에 이어 22일에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을 ‘조종’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정은이 이달 초 시 주석을 두 번째로 만난 이후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을 ‘세계 최고 수준의 포커 플레이어’라고 부르며 강한 불신을 표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김정은과 트럼프의 만남이 앞으로 나아가려면 신뢰가 필요하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게 하려면 미국이 확실한 체제 보장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북한은 체제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핵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핵무기가 북한에 가져다준 안전감을 국제 보장으로 대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미국은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과 (이라크의) 사담 정권을 무너뜨렸다. 미국인들은 북한에 속는 것을 항상 걱정하는데, 왜 북한이 미국을 믿어야하는지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고 했다.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5월 8일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서 3월에 이어 2차 북·중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김정은이 시 주석을 두 번째로 만난 후 태도가 돌변했다며 시 주석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신화통신
이 매체는 이어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중국은 미·북 신뢰 구축에 필수적”이라며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북한 입장에선 장기적으로 중국만 신뢰할 수 있으니, 북핵 위기를 해결하려면 미국이 중국과 소통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중국 관영 매체 차이나데 일리도 이날 ‘김정은과 트럼프의 정상회담을 위한 현실적 기대가 필요하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미국에게 북한에 대한 체제 보장 약속을 지키라고 했다.

이 매체는 “신뢰 부족 때문에 과거 협정들이 깨진 역사는 양측의 요구와 기대가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도 “미국이 북한을 위한 체제 보장 약속을 지키는 게 상황 진전을 위한 핵심”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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